[역경의 열매] 이혜훈 (1) 49년 신앙 생활에도 못 깨우친 ‘하나님 뜻 알기’
입력 2013-09-01 17:01
4대째 믿는 집에서 태어나 49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앙의 선배들 앞에선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어릴 적부터 성경암송대회나 성경퀴즈대회라면 단골 1등이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등등 성경의 수많은 계명들은 당연히 꿰고 있다. 그런데 A와 결혼해야 할지 B와 결혼해야 할지, 정치를 해야 할지 연구원을 계속해야 할지 등등 어떤 시점에서 내가 내려야 할 결정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는 일은 오늘도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물론 50년 가까운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내는 일에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입시와 결혼 때, 유학시절, 정치를 시작할 때, 공천 문제로 속을 끓일 때, 길지 않은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는 조금씩 자라났다.
강이 직선으로 똑바로 흐르지 않고 돌아 흐르면 흐를수록 강 주변의 풀과 나무가 많이 자라고 동물들이 서식하는 면적이 넓어진다. 내 인생도 고비 고비 역경을 만나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자랐고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했다.
10대 시절에는 철이 없어 ‘이번 학기에는 이걸 꼭 이뤄주세요’ ‘연말까지는 이걸 꼭 마무리해야 합니다’ 등등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뜻을 들이밀며 내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20대에 결혼 문제에 부닥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여쭤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30대에 정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단을 내려야 할 기로에 섰을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이 법안에 찬성하기를 원하시는지 반대하기를 원하시는지,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것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등등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오늘도 무릎을 꿇는다.
2002년 울산 중구 보궐선거에 공천 신청을 할 것인지를 두고 1주일간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한 뒤 공천 신청을 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알았지만 최종 심사까지 가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그때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한 일이 그동안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패해서 먼 길을 돌아오는 경우조차 곧바로 직진한 경우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깨닫곤 한다. 만약 그때 울산 중구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했더라면 어땠을까. 현역 국회의원으로 급작스레 타계하신 시아버님의 자리를 잇는 보궐선거였기 때문에 ‘누구의 며느리’란 꼬리표, ‘세습’ 어쩌고 하는 논란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시아버님과 무관한 서울 서초구에 경제전문가로 영입돼 당선되면서 정치적 입지는 훨씬 더 나아졌다.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여종과 함께하신 지난 49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언약의 말씀의 증표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이혜훈 최고위원 약력=1964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17·18대 국회의원,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사랑의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