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22) 독일의 상생·협력 정치

입력 2013-09-01 17:10


초당적 협력이 가능한 독일의 정치구조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하나의 정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은 사례가 없다. 어느 당도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했고, 이에 따라 2개 이상의 정당이 모여 연합정부(연정)를 꾸려야 했다. 모든 정당이 안정적이라 골고루 지지를 받는 이유도 있지만, 한쪽에 권력을 몰아줘선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도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독일의 내각책임제에는 군소정당의 의회 진출을 막는 장치가 있어 여야 간 극단적 이념 충돌이나 갈등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초당적 합의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구조인 셈이다.

◇대연정…적과의 동침, 가장 성공한 정권=연정은 주로 비슷한 성향의 당끼리 이뤄왔다.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CDU·CSU) 연합과 자유민주당(FDP)의 현 연정이나 중도진보의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연정이 그 예다.

하지만 이념이 전혀 다른 좌·우의 대연정도 두 차례(1966∼69년, 2005∼2009년)나 있었다. 대연정을 이루면 두 정당은 향후 정부의 정책 방향 등을 정하는 ‘연정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논의를 거듭한다. 물론 수차례 결렬 위기도 겪는다.

거듭된 논의를 토대로 연립정권 내에선 여러 현안을 둘러싸고 당의 노선을 앞세우기보다 협력을 통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확보해 나간다. 일례로 2006년 9월 29일, 여당인 CDU는 대연정 파트너인 SPD를 설득해 부모수당법(Elterngeld)을 연방의회에서 통과시켰다. 2007년부터 출산 후 부모 중 한 명이 12∼14개월간 아이를 돌보면 출산 전 임금의 67%(최대 1800유로·266만원)를 국가가 보조해주는 내용이다. 당시 야당인 FDP·녹색당·좌파당 등은 모두 반대했다. SPD는 일·가정 양립 취지로 당내 이견에도 불구하고 협조했다.

독일 정치사 전반을 놓고 보면 대연정이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 적도 있다. 특히 세금 문제 등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첨예하게 대립해 정치권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더 많은 초당적 합의 사례를 만든 토대라는 점이다. 연정 파트너는 정책 수립, 법안 통과에 협력해줬던 터라 야당이 된 후에도 관련 내용에 대해선 무작정 당론으로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SPD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1969년 10월 정권을 잡은 이후 추진했던 동방정책(동독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화해·개방정책)에 직전 정권의 대연정 파트너였던 CDU가 협력해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뒤이어 보수적인 CDU의 헬무트 콜 정권에서도 이 정책은 계승됐고, 콜 총리는 브란트 총리를 직접 만나 자연스러운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곤 했다. 이는 훗날 동서독 통일의 초석이 됐다.

◇국민 두려워하는 여야=초당적 합의는 유럽 경제위기 후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금융구제책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2011년 9월, 남유럽을 도울 10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ESEF)을 여당인 CDU·CSU가 밀어붙였다. 하지만 연정파트너인 FDP에서조차 거세게 반발하면서 예산 집행이 불투명해졌다.

그러자 국제적 연대를 강조해온 SPD와 유럽연합(EU)을 경제공동체로 만들자던 녹색당이 여당 편에 섰다. 611명 재적 의원 중 523명의 찬성으로 법안은 통과됐다. 이런 여야의 협력에는 좌우 이념에 앞서 ‘EU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 우선 반영된 것이다.

타협과 합의문화는 독일 역사의 산물이다. 바이마르공화국(1919∼33년) 시절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소수정당의 난립으로 정치적 혼란이 아주 심했다. 이후 나치의 폭력적 전체주의를 경험한 독일인들은 안정적 정당 구조를 원했다. 이에 따라 1953년 선거법으로 의회 진출 기준으로 정당득표율(5% 이상)을 만들었다. 극단주의적 정당 출현을 막아 여야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또 안정적 내각제의 핵심인 ‘건설적 불신임제(연방법 제67조. 총리 불신임 전 연방의회가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후임 총리를 확정해야 하는 강제 조항)’가 지난 60여년간 고작 두 차례 시도된 것도 정쟁에 휩쓸린 결정이 거의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연방의회·참사원의 협력과 견제=국민 선거로 선출되는 연방의회(Bundestag)와 달리 연방참사원(Bundesrat)은 16개 주에서 인구 수에 따라 각 3∼6명까지 파견된 대표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주 입장을 대변하는 동시에 연방의회와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연방의회는 CDU·CSU 연합이 여당이지만 참사원의 경우 총 69명의 구성원 중 SPD(32명)가 다수당을 이룬다. 이에 연방의회에서 CDU·CSU 연합이 밀어붙여 통과된 법안이라도 입법·집행 동의권, 참여권을 갖고 있는 참사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 입장보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반대는 없다. 예컨대 지난 6월 연방의회는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업소 규제 강화 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SPD가 이끄는 연방참사원도 하루 후 해당 법을 승인했다. 2001년 SPD 등이 성매매 합법화를 허용한 데 따른 국내외 비난을 의식한 조치였다.

베를린=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