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예술혼… 비운의 요절 작가 열정을 돌아본다

입력 2013-09-01 17:20 수정 2013-09-01 11:12


조각가 구본주(1967∼2003)와 서양화가 최욱경(1940∼1985). 활동한 시기는 다르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작가라는 점이 공통분모다.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두 작가는 살아생전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 교통사고로 숨진 구본주는 보상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올랐고, 최욱경은 ‘학동마을’이라는 작품이 2007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뇌물로 건네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두 작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본주 10주기 추모전 ‘세상을 사랑한 사람, 구본주’=10월 13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구본주는 1987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16년을 다니다 졸업하던 200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당시 보험사 측은 “조각은 단순한 육체노동이고 신체 가동연한(정년)을 60세에 맞춰 도시일용노임(무직자 수준)을 기준으로 보상하겠다”고 밝혀 예술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구본주의 죽음은 ‘예술가의 정년을 몇 살까지 인정할 것인가’ ‘예술가의 작업을 단순한 노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사회적 이슈를 낳았고, 이후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가 대폭 개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말부터 노동자와 서민들의 구겨진 삶과 주름을 따스한 시선으로 어루만진 ‘영원한 청년조각가’ 구본주는 죽으면서까지 팍팍한 현실에 희망의 불씨를 남긴 것이다.

‘작고작가 재조명전’으로 미술관 전관과 야외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고교 시절부터 숨지기 직전까지 제작했던 그의 ‘구상표현조각’ 90여점을 선보인다. ‘세상-역사/시대정신(1986∼1994)’ ‘사람-사회/현실비판(1992∼1997)’ ‘사랑-삶/현실(1997∼2003)’ 등 3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경기도 포천의 작업실 유작들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소장품, 개인소장품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밑그림과 각종 자료, 평소 사용했던 작업도구들도 함께 볼 수 있다. 1999년 KBS 2TV ‘발굴 이사람’ 영상을 통해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나볼 수 있다. 구본주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지만 세속적이지 않았다. ‘세상’ ‘사람’ ‘사랑’이라는 세 개의 전시 키워드가 이를 상징한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그의 작품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관람료 4000∼5000원(02-737-7650).

◇한국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 최욱경 개인전=5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온 최욱경은 1963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한 당대 유행 사조와 경향들을 수용하고,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를 통해 한국적 미감으로 체화시켰다. 한국적 색채추상의 선구자로 각인되기까지 미국 작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말 귀국한 그는 영남대와 덕성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작업에 열정을 쏟았다. 그의 작품들은 주체할 수 없는 작가적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 그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을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동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느꼈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드러냈다. 마음속 내면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색채를 통해 꽃봉오리나 여성의 인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회화 40여점과 드로잉 100여점을 선보인다. 인물 드로잉, 자화상, 콜라주, 흑백 풍경과 추상화 등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먹과 잉크를 이용한 인체추상도 인상적이다. 거침없는 색채와 힘찬 붓놀림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행복과 고뇌, 참과 거짓 등 양극의 세계이다.

그동안 최욱경 전시는 한창 나이에 지병으로 요절하기까지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생애에 집중돼 있었다. 작품세계에 대한 진지한 조명보다는 ‘학동마을’ 파동으로 그림값이 오른 것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1960∼80년대 보수적인 국내 화단에서 표현의 영역을 극한까지 확장했던 최욱경. 작품 전반을 통해 치열하게 살다간 그의 열정과 가치를 살펴보게 한다. 관람료 2000~3000원 (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