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90주년] 강효숙 원광대 교수 “日 정부 책임 묻고 정보공개 요구해야”
입력 2013-08-30 18:00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9월 1일로 꼭 90년을 맞지만 일본 정부가 공식 발표한 조선인 희생자 수는 230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1923년 9월 일본 사법성(현 법무성)이 발표한 수치인데 이후 일본 정부가 이 수치를 공식적으로 바꾼 적은 없지요.”
최근 독일 외무성 자료를 근거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가 당초 알려진 6661명이 아니라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2만3058명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한 강효숙(52·사진) 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30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6661명이라는 숫자는 중국 상하이 거주 조선인 조사단이 일본 현지에서 1923년 11월 28일까지 집계한 수치예요. 재일교포위문반과 당대 일본 최고 지식인인 ‘중앙공론’ 편집장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조사한 것을 비교해 도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자료는 이보다 4개월 후인 1924년 3월 작성된 것이기에 지금까지 나온 관련 사료 중 최종적인 조사 결과물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지요.”
독일 외무성 자료를 보면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조선인 피해자 8271명 △장소 미확인·시신 확인 피해자 7861명 △장소 미확인·시신 미확인 3249명 △경찰에 학살된 피해자 577명 △일본기병(군인)에 학살된 피해자 3100명이었다.
“이 자료는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한국인이 제공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일본 측에서 신뢰도를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피해자만 8271명에 달합니다. 당시 와세다대 교수 출신인 오우치 리키(大安力)는 해군 장교였던 친척의 말을 빌려 ‘당시 요코하마 항구에 조선인 시신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위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으니 바다에 버려진 사체까지 합치면 희생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지금까지 발굴된 조선인 유해 3500여명 가운데 이름이 밝혀진 유해는 80여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80여구 중에서도 나이나 직업, 한국 내 주소까지 밝혀진 건 20구밖에 안됩니다. 문제는 지금껏 정식으로 한국에 인도된 조선인 희생자 유해가 단 한 구도 없다는 점이에요. 국제적십자사가 시신 매장 장소에 대한 조사에 나선 적도 있지만 일본 우익단체가 다른 장소로 이장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그러니 이제라도 한·일 민간단체가 서로 연대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정보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9월 1일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