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수사] 법조계 “녹취록 내용 위험하지만 유죄 입증 쉽지않아”
입력 2013-08-30 18:12 수정 2013-08-30 22:19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지하혁명조직(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비공개 모임에서 했다고 알려진 발언 등에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의 발언 내용 자체는 대단히 위험한 수준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녹취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녹취록 이외에도 다른 증거들이 많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발언의 맥락이 중요=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5월 비공개 RO 모임에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군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어진 소규모 그룹 논의에서는 ‘전쟁 시 통신과 유류 등 국가 기간시설을 우선적으로 타격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런 발언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경우 조금씩 해석이 달랐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30일 “내란죄가 형법상 가장 무거운 죄임을 감안한다면 비록 음모 단계라 하더라도 유죄 인정을 위해선 훨씬 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녹취록 발언들이 나온 ‘맥락’을 살피는 일이다. 회합에 참여한 RO 구성원들의 관계, RO의 구성 목적, 5월 회합 이전의 다른 모임들에서 나온 발언 등 관련 사실들이 녹취록의 발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 즉, 녹취록이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증거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다른 증거들도 많이 수집해둔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예컨대 녹취록에서는 평택에 있는 유류탱크 폭파와 관련된 대화가 등장한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탱크가 니켈합금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두께가 90㎝에 이른다”며 “이미 조사를 해놨다”고 했다. 국정원은 RO가 녹취록의 말뿐 아니라 이들이 내란을 위한 실제 준비활동을 하는 등의 움직임을 지난 3년간의 내사를 통해 확보했을 수도 있다. 법원이 이 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것은 국정원이 RO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꽤 많은 정보를 이미 수집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행 가능성 입증돼야=실행 가능성도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RO가 얼마나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했는지, RO가 그런 계획을 이행할 만한 수준은 되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오며가며 커피나 마시다 나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뒤집어 버리자’고 했다고 내란음모를 적용할 수는 없다”며 “분노의 수준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음모가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과 그 이후 사회에 미칠 파괴력·영향력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 부분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양형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정원 등이 보유한 증거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수집된 것인지도 중요하다. 공개된 녹취록은 국정원이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지난 3년간 수집한 증거들이 모두 적법한지는 검증받아야 할 부분이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국정원이 핵심 증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받은 일부 진술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