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 백두산 평화기행 동행기… “통일의 길 멀고 험해도 손잡고 같이 가자”
입력 2013-08-30 17:34 수정 2013-08-30 20:12
“한반도에서 가야 할 길을, 거친 만주벌판 멀고 먼 길을 돌아 그곳 천지에 닿았습니다. 바로 눈앞에 우리의 형제자매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서 민족분단의 아픔을 보았습니다. 이제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 길이 멀고 험해도, 지쳐 힘들어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화의 그 길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인천YWCA 김말숙 부회장이 ‘백두산 평화기행’에서 발표한 ‘평화를 위한 기도문’이다.
여성이 만드는 평화와 미래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기독여성 리더들이 지난 19∼23일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을 찾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민족화해,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옌지∼백두산∼투먼을 잇는 평화순례에 나선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비전을 확립하는 데 밀알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한국YWCA와 뉴욕 퀸즈YWCA, 옌볜민들레문화교류협회가 손을 잡았다.
중국 옌볜에서 열린 ‘한국·옌볜·퀸즈 여성들이 함께 하는 백두산 평화기행’엔 한국 중국 미국 등 3개국에서 72명의 여성들이 참석했다. 차경애 한국YWCA연합회 회장은 “평화기행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열린 국제적인 행사다. 평화기행을 한다는 것이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서로를 알고 평화를 이뤄나가는 길에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강교자 YWCA 직전 회장은 “한국에서 가진 준비모임에서 ‘하나는 여럿이다’란 주제로 예배를 드렸는데 통일이 안 되는 것은 여럿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만 옳다는 편견 때문”이라며 “편견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평화운동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평화를 향해 한국YWCA가 걸어온 길
평화기행은 옌지에서 출발했다. 이곳은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로 주민의 40%가 조선족이다. 거리의 한글과 중국어가 병기된 간판들이 친근해보였다. 평화기행 둘째 날, YWCA평화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세미나를 옌볜과학기술대에서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강 직전 회장은 “YWCA운동은 사랑실천운동이며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통한 하나님나라 운동”이라고 밝혔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교회 안에서 극소수지만, 북한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즉 예수님은 북한사람들을 위해서도 피 흘리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깨달음이 회개운동을 일으켰으며 전쟁이 아닌 평화로 이루는 통일운동에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YWCA연합회는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오래전부터 남북교류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북한과의 교류에 기대감을 안고 1994년 옌볜에서 첫 모임을 가졌고 2년 뒤 뉴욕에서 2차 모임을 가졌다. 두 모임을 통해 평화통일과 여성의 역할 및 국가별 활동을 구체적으로 논의했고 그동안 평화영성운동, 평화교육운동, 평화나눔운동, 평화돌봄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올해 3차 모임을 가진 것이다. 세미나를 겸해 열린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평화운동의 성찰과 함께 교류와 협력의 틀을 다졌다. 또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결의하는 등 여성 평화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천지와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한
평화기행은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여성들은 백 번을 오르면 두 번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향해 21일 새벽, 길을 나섰다.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이 75%라는 가이드의 말에 모두 기대에 부풀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다행히 천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종교를 드러낼 수 없는 현지 분위기 때문이었다. 짙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쓰고 천지를 감상하는 듯 묵상 기도를 드리는 참가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세계YWCA 이사이자 한국YWCA연합회 실행위원인 원영희 성균관대 교수는 “이렇게 가까운데 먼 거리를 오래도록 두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생각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원 교수는 “통일의 때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셨다는 것을 알고 그때가 빨리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투먼시를 찾는 것으로 평화기행의 대장정을 정리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시와 마주하고 있는 곳. 한 가이드는 “어릴 적 두만강에서 물놀이를 하며 북한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고백했다. 바로 눈앞에 동포의 땅을 두고도 밟아볼 수 없음에 모두들 먹먹해했다.
미래에 간호사를 꿈꾸는 대학생 박현슬(20)씨는 “두만강 너머에 있을 제 또래의 친구에게 목소리가 아닌 손짓으로 ‘안녕’을 외쳤다”며 “그것도 누가 볼까 봐 몸으로 손을 숨겨가면서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평화통일은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크리스천이 꼭 이뤄야 하는 소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옌지=글·사진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