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울음이 있는 작은 방
입력 2013-08-30 17:03
낡은 골목이 있었다. 세월이 책갈피마다 포개져 누렇게 낡은 책방들이 늘어선 그 거리 길가에 아주 작은 화실이 하나 있었다. 그곳엔 이름 없는 화가들의 그림 서너 점이 걸려 있었고 작은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한 사람만을 위한 그 공간을 나는 이따금 슬그머니 들어서보곤 했었다. 서너 걸음으로 꽉 차 버리는 그 공간에서 나는 짧은 자유를 누리곤 했다. 그리고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었다. 곳곳에 이렇게 작은 공간의 집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들판이건 거리건 어느 한 모퉁이에 혼자 들어가 실컷 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힘들고 지쳐 있고 울고 싶었던 때였다.
며칠 전 만난 중년의 남자는 눈물이 나와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갑자기 상처를 하게 된 그는 울컥 울컥 눈물이 나와 교회에서 예배드리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의 가슴에는 툭 치기만 해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울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는 울 공간이 없다. 집에서는 어린 자식들을 지켜야 할 가장이라서 울 수 없고 감정이 할례된 직장에서도 울 수 없고 믿음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교회에서도 그는 울 수 없다. 그에게는 마음껏 소리쳐 울 수 있는 작은 울음방 하나가 절실했다. 어린아이처럼 발버둥치며 울다가 웃고 일어설 수 있는 그런 방이 어른일수록 필요한지도 모른다.
문득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펑펑 울고 싶다면 그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아직 가슴 속에 눈물이 말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 수 없다면 마음밭이 황폐해질 것이다. 삶에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관계의 그물 속에 얽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혼자만의 공간은 정서의 우물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 지존자 앞에서 울 수 있는 당신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기를….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 작가)
◇오인숙 교수 약력=
서울 교육대학, 국민대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 협성신학대학교 졸업. 전 우촌초등학교 인천영화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