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굿피플 해외아동후원] “너무 예쁘죠, 꼭 지켜줄거에요 느낌을 아니까”
입력 2013-08-30 17:25 수정 2013-08-30 20:14
굿피플 해외아동후원 ‘케냐 필드트립’ 현장
“사진 속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가느다란 팔목에 살은 좀 올랐을까…. 첫 인사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5년을 기다린 만남이다. 기대만큼 조심스럽다. “그 아이들은 나를 좋아할까?”
성유경(56·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는 2008년부터 케냐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국제개발 NGO 굿피플이 개최한 ‘케냐 필드트립’에 참가했다. 이제 11살, 12살이 된 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안녕? 난 한국에서 온 성유경이야.”
아이들은 대답이 없다. 수줍은 미소를 숨긴 채 동행한 엄마 등 뒤로 숨었다. 귀국 전날인 15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세 사람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 팔로 보듬은 사랑
“두 아이는 나이로비에서 버스로 9시간 거리에 있는 뭄바사에 살아요. 처음엔 너무 멀어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거라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 무척 감사해요.” 성 권사는 케냐 어린이 4명을 후원하고 있다. 이번에 만난 리디아 무완지아(12)와 채리티 패트릭(11)은 모두 여자 어린이다. 아이들은 전날 밤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서 좋아요, 반갑습니다.” 10여분이 지나서야 아이들은 입을 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후원자의 얼굴과 표정을 한동안 살피고 나서야 경계심을 풀었다.
“리디아는 꿈이 의사, 채리티는 비행기조종사예요. 특히 리디아는 지금 학교에서 성적이 1등이래요. 꼭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성 권사와 아이들의 잡은 손이 서로 어색하지 않을 무렵, 이들은 함께 시내로 쇼핑을 나섰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쇼핑몰이다.
아이들 마음에도 꼭 드는 예쁜 옷 몇 벌을 골랐다. 그러나 그 옷들은 다시 제자리에 놓아야 했다.
“윗도리 소매나 바지 길이가 너무 짧아요. 우리가 사는 마을은 보수적이라 많은 노출은 삼가야 해요. 그리고 너무 비싸요. 이 가격이면 고향에서 더 많은 옷을 구입할 수 있는데….” 유치원 교사인 리디아의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성 권사는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준비한 ‘마음의 정성’을 손에 쥐어주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이들은 성 권사의 손을 놓지 않았다. “반드시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또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마.” 후원자의 격려에 두 아이는 “예”라고 짧게 답했다. 대신 성 권사에게 화답한 미소는 한참 길었다.
성 권사는 현재 6개국 32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왜 후원하냐고요? 아이들은 그 나라의 미래입니다. 눈을 보세요. 천사예요. 그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른 아이들을 또 구원할 겁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가슴으로 품은 사랑
“손자를 얻은 기분이시죠?” 기자의 물음에 또 다른 후원자 우태진(64)씨는 활짝 웃었다.
지난 10일 굿피플이 후원하고 있는 나이로비 마운틴케냐 초등학교. 눈이 큰 아이는 정신이 없고 너무 쑥스럽다. 사진으로만 봤던 후원자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일마르바에서 버스로 6시간 달려왔는데 할아버지가 얼굴도 익히기 전에 자신을 너무 꼭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맞아요. 새로 얻은 손자지. 생각보다 키도 크고 똘똘해 보여 좋아.”
폴로콰 카페이(11)를 2년째 돕고 있는 우씨는 TV에서 굿피플 광고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 “한 달에 3만원, 그거 우리에게 큰돈 아니잖아요. 마침 후원아동 보러 간다고 하길래 솔직히 아프리카 관광 삼아 왔는데, 막상 아이를 만나보니 이곳에 오기를 너무 잘했어.” 두 사람은 친교 프로그램에 따라 함께 벽화를 그리고, 마당에 꽃도 심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
우씨는 한국에서 싸가지고 온 선물 보따리를 아이에게 안겼다. 학용품보다 과자를 더 준비했단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잘 먹어야 하니까. 그리고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당부 또한 한보따리다. “밥 잘 먹고 공부 잘해야 해. 그리고 은행원이 된다는 꿈 꼭 이루고.”
후원받고 아이들이 뭐가 달라졌을까 기자는 궁금했다. “꿈이 생겼다”고 동행한 굿피플 자원봉사단원이 귀띔했다. “이곳 아이들이 너무 순수해 말수가 적어요. 하지만 이제는 크게 웃을 줄도 알아요. 활발해지고요. 그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우씨는 조카 남편이 우즈베키스탄 선교사라고 했다. “내년엔 꼭 조카딸에게 가볼 테야. 내가 그 결혼 반대했었거든. 그런데 여기 와서 선교사님들의 수고를 보니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지 알겠어.”
어깨에 걸어준 사랑
폴로콰와 함께 온 카사인 리캄바(8)는 신희정(25)씨가 3년째 후원하고 있다. 신씨는 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때 남을 도와줄 결심을 했고 현재 3개국 3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
처음 만난 아이와 전통음식인 만다지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굿피플이 만들어준 학교 주방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두 사람. 시간이 흐르자 TV 드라마처럼 아이 얼굴에 밀가루가 묻었고, 이내 웃음이 터졌다. 마음이 열린 것이다. 함께 만든 만다지는 이날 학교 아이들의 점심 식사였다.
직장에 다니는 신씨는 이번 방문을 위해 어렵게 휴가를 얻었다고 했다. “한번 만난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했죠. 그렇지만 그냥 느끼는 거죠. 서로 고맙다는. 그리고 서로 지켜줄거라는….”
아이의 꿈이 바뀌었다고 했다. 선생님에서 의사로. 지금 제도로는 아이가 18세가 되면 후원이 끝난다. 신씨는 아이가 의사 공부를 하려면 학비가 필요하니 끝까지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의사가 돼 병든 이웃들을 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신씨는 학용품으로 가득 채운 가방을 아이의 어깨에 걸어줬다. 아이의 대답은 역시 미소다. 신씨는 자원봉사단에게 아이가 사는 일마르바까지의 거리와 교통비 등을 물었다. “2∼3년 안에 다시 올겁니다. 그땐 많이 자랐을테니 서로 미래에 대해 얘기해보려고요.”
신씨는 후원 아동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손목에 묶어준 사랑
유태상(44)씨는 어느 날 가족에게 선언했다. “아빠는 올 여름 ‘수양딸’ 만나러 케냐에 간다. 따라올 사람은 따라와.”
처음엔 아들 병현(12)이만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내 이주경(41)씨는 두 부자가 못 미더워서 따라가기로 했고, 딸 정혜(14)는 고민 끝에 공부를 잠깐 쉬기로 결심, 온 가족이 케냐 뭉게에 사는 아빠의 수양딸을 만나기로 했다.
12일 아침 유씨 가족은 분주했다. 각자 가져온 선물도 확인했다. 뭉게는 나이로비에서 6시간 거리에 있다. 교회가 지역 관청을 설득해 닦았다는 비포장도로를 50여분 더 달려 도착한 뭉게 M.C.K이마니초등학교. 낯선 손님들을 춤과 노래로 환영하는 200여명의 학생 가운데 수양딸 에스더(9)가 있었다.
“이곳 마사이족 아이들은 아주 순진해서 눈도 못 마주쳐요. 특히 외부 사람들 방문이 흔치 않아 수줍음을 많이 타니 예쁘게 봐주세요.” 뭉게초대교회 지동오(40) 선교사 부부가 귀띔해줬다.
곧이어 미니 운동회가 열렸다. 과자 따먹기, 릴레이, 줄다리기 등 11명의 후원자와 아이들이 뒤섞였다. 뛰다가 넘어지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줄다리기에서 이기고 함께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아이들은 서로 많이 닮았다. 선한 눈빛도, 해맑게 웃는 모습도. 그러니 아이들 사이에서 수양딸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내 이씨가 꾀를 냈다. 아이 손목에 손수건을 묶어준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운동회 내내 손을 잡고 다녔다.
운동회가 끝나고 유씨 가족은 에스더를 앞세우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후원가정 방문이다. 2년여 후원한 가정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지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집 앞에 도착해 모두가 놀랐다. 번듯한 집 두 채에 가족들의 옷차림도 깨끗했기 때문이다.
“후원해주셔서 맺은 커다란 열매입니다.” 통역을 겸해서 동행한 지 선교사의 설명에 의하면 2년 전 에스더의 아버지는 무척 빈곤했다. 그러나 후원을 받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해서 소도 여러 마리 기르고 넓은 밭도 장만하게 되었다고 했다. 딱 2년 만에.
에스더네 집 마당에는 전통 마사이족 복장을 한 친척들이 모여들었다. 유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과 함께 직접 만든 허리띠와 팔찌를 선물했고 인사도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두 가족이 앞으로 형제처럼 지내며 또 만나기를 바랍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두 가족이 함께 섰다. 에스더의 어린 막내동생은 한국에서 온 유씨가 품에 안았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작별인사를 하던 유씨는 아직도 아이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순간 내 아이인 줄 알았어요. 올해 딸 이름으로 한 아이를 더 후원할 겁니다. 내년에는 아들도….” 돌아오는 길, 가족들은 되뇌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나이로비·뭉게(케냐)=글·사진 황병설 기자 bshwang@kmib.co.kr
굿피플
케냐 필드트립을 주선한 굿피플은 1999년 7월, 극심한 가난과 질병 재난 등에 노출돼 있는 지구촌 이웃의 현실을 알리고 국경을 초월한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해외 16개국 5200여명, 국내 470여명의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케냐에는 봉사단원 8명이 5개 사업장에서 현지 어린이 교육 등을 지원하며 한국 후원자와 아동 간의 편지 교환 등 결연 업무도 돕고 있다. 후원 문의 02-783-2291/www.goodpeopl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