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자살은 질병일까

입력 2013-08-30 18:51


자살을 병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과학자들 연구 결과에서도 그런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팀은 제2번 염색체에서 조울증 환자의 자살 충동을 유도하는 변이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조울증 환자들 중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비교한 결과 제2번 염색체 가운데 하나가 변이된 사람은 1.4배, 두 쌍 모두 변이된 경우는 3배 정도 자살 충동이 일어날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자살에 관한 열망이 높은 사람일수록 특정 화학물질의 수치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미국 미시건주립대를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팀이 자살 시도 후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루타메이트의 활성을 측정한 결과 자살 시도자들이 2배나 높은 수치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낸 것. 이 수치를 감소시켰을 때 실제로 자살과 관련된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글루타메이트는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아미노산으로, 오래 전부터 우울증과 관련된 화학물질로 의심받아 왔다.

최근엔 혈액 속에 있는 특정 단백질 수치의 상승이 자살 가능성과 연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인디애나대 연구팀이 남성 조울증 환자와 자살한 남성들에게서 채취한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SAT-1이라는 단백질의 수치가 높을수록 자살 위험도 높게 나타났다는 것.

이런 결과들이 실용화되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자살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고,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약물이 출시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살 사망자의 약 90%가 사망 1년 전에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1개월 이내 방문자가 76%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미국 정신의학회 및 세계보건기구 등의 진단 지침에 자살이라는 병명은 없다. 또 많은 학자들이 자살을 병으로 규정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자살을 치료해야 할 병으로 취급하게 되면 치료받아야 할 대상만 있을 뿐 자살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자살은 이미 중요한 사회 문제다. ‘자살론’을 쓴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고 정의했다. 너무 늦기 전에 자살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질병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조처해야 한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