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어?” 반기문 考
입력 2013-08-30 18:52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청와대를 방문,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관련해 “유엔 차원에서 이 계획을 어떻게 도울지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고 한편으로 자랑스러운 장면이다. 자랑스럽다는 것은 일본 국토 넓이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남한 땅에 태어나 6·25의 참상을 겪은 한 소년이 지구촌 평화메신저로 활약하는 유엔 사무총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법적·정치적·제도적 측면 등에서 유엔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 총장은 ‘개성공단 운영 정상화 합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협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에 대해서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최대한 보완적 역할을 해드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방북계획’ ‘동북아 3국의 긴장관계 문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7가지 이슈가 유엔 사무총장 휴가 기간 중 언급된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한 이슈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해냈다고 본다. 한데 때와 장소가 아쉽다.
때. 그는 휴가 중이었다. 휴가 중에 고향을 방문해 그 지역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멘토가 되어주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그 휴가 중에 ‘7가지 이슈’를 언급한 건 때가 아니다. 그는 한국적 관행에 별 무리 없을 것으로 판단, 외신에 타전될 핫이슈를 언급했을 수 있으나 국제 매너는 아니다. 또 그렇게 시급을 다툴 사안도 아니었다.
장소. 청와대에서 ‘유엔의 DMZ 조력 계획 검토’를 처음으로 밝혔다. 휴가 중 비공식적 접견일 수 있으나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국제적 이슈를 첫 언급한 장소가 청와대라는 것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균형적이지 못하다. 한국인이기에 앞서 세계를 대표하는 지위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유엔본부에서 공식적으로 먼저 언급하고, 청와대 접견 시 세세한 내용까지 나누어야 했다고 본다.
기자회견도 장소가 틀렸다. 한국 내 유엔난민기구나 프레스센터 등이 적합했다고 본다.
이 같은 행보에 당장 속 좁은 일본 언론이 맹비난에 나섰다. 심지어 기자회견장에서 유엔 공용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를 썼다고까지 시비다. 반 총장은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깊은 성찰’을 요구했었다. 맞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그 사안은 유엔본부에서 했어야 했다. 위안부 문제 등을 함의한 발언 아닌가. 왜 ‘국내용’으로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반 총장은 싫든 좋든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앞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다음으로 대권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다음 대선은 2017년이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2016년까지다. 남북관계 등 통일 이슈가 어느 대선보다 분명해지는 상황일 것이고 그럴수록 반 총장은 유리하다. 따라서 그의 국내 행보는 정치색이 덧씌워질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그가 귀국하더라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가 모국 방문을 하면 딱 고향에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반기문은 세계가 열망하는 평화의 메신저다. 따라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다양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 정서만 가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게 되면 국제 무대에서 또 다른 ‘반기문’을 낼 수 없다.
전정희 디지털뉴스센터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