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챙겨주는 회사] 잠깐! 사원 여러분 살~ 살~ 빼고 근무하세요
입력 2013-08-31 04:08
오주임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다.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힘들면 당장 포기할 수 있다. 손을 뻗어 문만 열면 됐다. 그러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드디어 정상에 마지막 발을 올렸다. 정상의 끝은 구내식당이 있는 14층.
오 주임의 수고를 축하하듯 마지막 316번째 계단에는 ‘150㎉ 감량’, 바로 옆 벽면에는 ‘건강수명 25분 연장’이란 글귀가 보였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살 빼주는 계단’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소비되는 칼로리 수치와 함께 살이 빠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계단 사진이었다. 국내에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계단이 있다. 바로 서울 신사동 한국 야쿠르트 비상계단이다. 야쿠르트 직원들은 이 건물의 비상계단을 ‘야쿠르트 건강 오름길’이라 부른다. 계단 오르기는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실천도, 포기도 모두 자기 선택이다.
이 회사 마케팅 부문 오윤석(33) 주임은 지난해 11월 회사가 건강계단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사흘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는 운동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한 달에 1㎏씩 감량하는 효과를 봤다.
오 주임은 29일 “사무실이 10층에 있어 출근할 때 걸어 올라가고, 점심시간에도 14층 구내식당까지 걸어서 올라간다”면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다 보니 늘 몸이 무거웠는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집중력도 높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건강계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비상계단을 새롭게 꾸몄다. 출발지점인 1층에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 Walk! Walk! Walk!’라는 문구를 적어 운동의 필요성을 알렸다. 고비 지점마다 ‘당신의 땀이 건강한 환경으로!’(5층), ‘머리가 복잡할 때 걸어보세요’(10층), ‘걷는 것도 맛이다’(13층)란 메시지로 완주를 독려했다.
비만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면서 직원을 위해 기업들이 살 빼주기 프로젝트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직원의 건강도 자산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도움으로 살을 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살 빼주기 프로젝트는 다양하다. 상금을 내걸어 다이어트 경쟁을 유도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첨단 ICT기술을 접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직장 동료와 다이어트 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GS샵은 지난 4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8주간 ‘다이어트 레이싱’이라는 사내 이벤트를 열었다. 3명씩 팀을 구성해 경쟁하는 ‘다이어트 레이싱’에는 총 54명, 18개팀이 참가했다. 레이싱 기간에 각 참가자는 개별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최종 체중을 측정해 가장 많이 감량한 팀에 100만원을 상금으로 주는 방식이었다.
회사는 적극적으로 다이어트를 도왔다. 구내식당의 아침 샐러드바 이용하기, 저녁에는 샐러드와 현미김밥 먹기 등의 미션을 부여했다. 구내식당에는 해당 식단을 제공하도록 했다. 다이어트 일기를 성실하게 작성한 사람에게 격려금 10만원을 주기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참여자 54명 중 34명이 ‘다이어트 레이싱’을 완주했다. 평균 체중 감량률 5.19%에 이르렀다. 대상을 받은 팀의 감량률은 평균 13.9%였다. 특히 개인 1등인 영상아트팀 최정호 선임은 15.8%, 약 13㎏을 줄였다.
살을 뺀 최 선임의 일상은 달라졌다. 살 빼기 전에는 무기력했고 집중력도 떨어졌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자신감이 업무 추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회사가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SK텔레콤이 실행하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좀 더 체계적이다. 서울대학교 병원과 공동으로 ‘헬스온’을 개발했다. ICT 기술을 접목한 헬스온은 세계 최초의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서비스다.
개인별 건강검진, 체력측정 결과와 식습관, 운동량 등 실생활 패턴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최적의 건강관리 목표를 세워준다. 식이요법 및 운동치료도 병행한다.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과 손목이나 허리에 착용하는 활동량 측정기 ‘액티비티 트래커’는 최대 강점이다. 이 측정기는 개인의 운동량 및 식사량을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이를 시스템에서 분석해 준다.
체계적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이다 보니 초기에는 참가자들이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감량을 경험한 뒤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1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모 매니저는 프로그램 참여 3개월 만에 세 자릿수였던 몸무게가 두 자릿수로 내려갔다. 그는 “30㎏을 뺐다. 일주일에 한 번 집단운동을 하고 회사 헬스클럽에 가면 트레이너가 직접 도와줬다. 2주간 도시락을 제공해 내가 먹을 수 있는 칼로리 양을 학습시켜 줬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김 매니저에게 도움이 된 것은 앱이었다. 하루에 자신이 걸은 횟수와 칼로리 소모 등이 블루투스로 연동돼 앱에 저장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료의 정보까지 볼 수 있어 열심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김 매니저는 “동료의 정보를 볼 수 있으니 경쟁심 때문에라도 운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여전히 비만이지만 건강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혈압, 혈당 등이 모두 위험상태였는데 살이 빠진 뒤로는 정상에 가까워졌다. 식사량 등을 스스로를 조절하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업무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기업의 직원 건강 챙기기는 구내식당 식단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급식업체인 아워홈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은 직원 건강을 고려해 건강식단을 추가했다. 포스코는 2010년부터 저염·저칼로리 건강식을 제공하고 있다. 아워홈은 직원 건강을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포스코 측 요청으로 건강식단을 처음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에서는 직원을 대상으로 건강식 조리법을 배우는 쿠킹클래스를 개최하고 있다. 요청하는 임직원에게는 영양사와 조리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 건강한 식탁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워홈이 운영하는 산업은행 구내식당에서는 컵샐러드와 과일샐러드를 별도로 비치하고 있다.
GS샵 기업문화팀 임형석 부장은 “임직원의 건강은 회사의 자산”이라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임직원 건강 증진 프로젝트는 이제 기업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