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옥요리연구원’ 조선옥 원장 “나빠진 한일관계, 음식으로 녹일 수 있다고 믿어”

입력 2013-08-29 19:36 수정 2013-08-29 22:28


“대형 행사를 앞두고 음식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잖아요. 저는 일단 사람들 다 모아놓고 ‘밥 먹고 합시다’를 외쳐요. 바쁘고, 급하고, 상황이 나쁠수록 일단 밥부터 먹어야 해요. 음식으로 시작하면 일도, 사람관계도 잘 풀려요. 제가 원래 배고프면 아무 일도 못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웃음).”

20여년째 일본에 체류하며 한식 요리사이자 컨설턴트, 요리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옥요리연구원 조선옥(49) 원장.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가 열리는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지난 28일 만난 그는 “한·일관계가 나빠지면서 새로 한식을 배우러 오는 일본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이럴 때일수록 밥 먹고 힘내자고 한국 교사와 일본 학생들이 모여 앉아 더 열심히 한국 음식을 해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일관계에 필요한 건 ‘일단 밥 먹고 합시다’ 같은, 시민끼리의 휴전 신호라는 얘기로 들렸다.

조 원장은 한식에 배타적이던 일본 특급호텔 주방장들의 마음을 한식으로 열게 된 사연도 전해줬다. 인연을 만드는 요리의 힘이다.

“한식 컨설팅을 위해 호텔 주방을 드나들 때가 있었어요. 주방장들이 자존심이 세잖아요. 처음에는 ‘이런 거 안 먹는다’면서 한국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아요. 제가 말없이 찌개랑 밥을 해줬더니 며칠 만에 ‘이게 한국식 찌개냐’ ‘더 달라’ 하면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음식이 마음을 연 거죠.”

도쿄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다 2009년 조선옥요리연구원을 오픈한 조 원장은 지난 4년간 일본 각지에1000명이 넘는 한식 요리제자를 배출했다. 대다수가 일본인. 최근에는 ‘한식소믈리에’라는 새로운 실험에도 도전했다. 올봄 일한농수산식문화협회를 설립한 뒤 한식소믈리에 자격증을 만들어 지난 7월에 첫 시험을 치렀다. 그냥 한식이 좋다는 일본인은 한식의 기본을 이론으로 공부한 뒤 4급 자격증에, 된장찌개 같은 간단한 한국 요리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은 3급에, 프로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들은 1∼2급에 도전할 수 있다.

“밥으로 시작한 관계, 음식으로 맺은 관계는 깊고 끈끈합니다. 음식이 한국과 일본 사이도 녹일 거라는 게 제 믿음입니다.”

대전=글·사진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