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현대 철학史 佛학자가 쉽게 풀다
입력 2013-08-29 19:06 수정 2013-08-29 22:22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로제 폴 드르와/시공사
지그문트 프로이트,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등등. 20세기 현대 철학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구조주의니 해체주의니 하는 현대 철학의 용어는 우리를 지레 겁먹고 손들게 하는 무기로, 때론 나와 철학은 절대 무관한 것이라고 합리화할 구실이 되곤 한다.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대로 아무리 복잡한 사상이라도 ‘만인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대 철학을 풀이한다. 프랑스 국제철학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1972년부터 ‘르몽드’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철학 평론을 써왔던 그는 철학 초보자를 위한 길잡이 역할에 주력해왔다. 2009년 전작 ‘처음 시작하는 철학’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용어 없이도 플라톤부터 마키아벨리, 데카르트,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에 이르기까지 사상사를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원제는 ‘간략하게 보는 철학사(Une breve histoire de la philosophie)’.
이번엔 그 눈을 현대 철학으로 돌렸다. 경험, 과학과 철학의 동행, 언어, 자유와 부조리 등 7개 분야로 나눠 20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베르그송이나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등 현대 철학사에서 뺄 수 없는 인물에 작가가 주관적으로 선택한 인물들을 더했다. ‘실용주의’를 만든 윌리엄 제임스, 철학을 과학적 사고방식의 요소로 발전시킨 윌러드 밴 오먼 콰인, 위대한 사상가 마하트마 간디 등의 등장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풀어간다. 이런 식이다. ‘다시 경험으로’란 타이틀이 붙은 첫 파트에서 베르그송과 제임스, 프로이트를 소개하면서 이들의 공통분모를 ‘우리는 누구나 본질이나 핵심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것을 경험할 수는 있다는 확신’이라고 소개한다. 세 철학자는 낯익은 경험 속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핵심, 예상치 못해 당혹스러운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베르그송은 우리 의식이 시간을 체험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에 집착하고, 제임스는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우리 기질과 개인적 경험이 미치는 영향에 역점을 둔다.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이다. 사실 오늘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무의식적 사고’라는 표현은 프로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프로이트 이전의 철학자들은 우리 몸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무의식적이라고 불렀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부르는데 이 표현을 썼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통해 정신현상과 의식은 서로 분리되고 의식은 단지 정신현상의 여러 과정 중 일부의 속성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 결과 더 이상 진리와 지식은 동일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사상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생 이야기도 흥미롭게 그렸다. 평생 엔지니어, 군인, 정원사, 건축가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비트겐슈타인의 장래 희망 목록에 철학자는 없었다. 어린 시절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꿈꿨고, 수학에 빠져든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의 강의를 수강한다. 학기말, 러셀을 찾아온 그는 “내가 완전 바보인지 아닌지 말해달라”며 “100% 바보면 경기구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다. 러셀은 “방학 동안 철학 주제에 대한 글을 써오면 판단해주겠다”고 했고, 이후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보자마자 “당신은 경기구 조종사가 될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만약 당시 러셀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편집, 구성 면에서 이 책은 친절하다. 각 장을 시작하며 철학자의 활동 무대, 그가 남긴 명언, 그의 사상에 있어 ‘진리’의 의미, 철학사에서의 위치, 간단한 연표를 소개한다. 번역자인 박언주 불문학 박사는 “현대 철학이 난해한데 프랑스 철학자들의 일조가 컸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쉬우면서도 핵심을 짚어주는 글쓰기로 철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각 장 말미엔 철학자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과 좀 더 깊이 알고 싶을 때 읽어야 할 책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은 원문 그대로 소개했으나 추가로 소개한 책은 번역자가 정리했다. 역자는 “저자가 소개한 책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발간된 책이고 그 중 90%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 국내 소개된 책 위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여타의 철학 입문서에 비하면 쉽게 읽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철학을 관통하는 개념 자체의 난해함은 독자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