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엄효섭 “배역·작품 욕심 그런 건 없어요 참여한다는 게 중요할 뿐”

입력 2013-08-29 18:04 수정 2013-08-29 19:30


‘학교 2013’(KBS2)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tvN) ‘구가의 서’(MBC) ‘황금의 제국’(SBS) ‘투윅스’(MBC). 올해 안방극장에서 상영됐거나 방영 중인 화제작들이다. 이들 작품의 장르나 방송사는 제각각이지만 교집합은 구해볼 수 있다. 바로 배우 엄효섭(47)이 출연했다는 것. 그는 지난해에도 ‘골든타임’(MBC)을 비롯한 숱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요즘 그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작품을 꼽자면 SBS 월화극 ‘황금의 제국’을 들 수 있다. 작품은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 암투와 돈 때문에 망가지고 굴절되는 인간성을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27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엄효섭을 만났다. 그는 매주 목∼일요일은 ‘황금의 제국’ 촬영에 임하고, 월∼수요일은 ‘투윅스’ 촬영장으로 ‘출근’한다. 어렵게 인터뷰 시간을 비우게 된 그는 “스케줄이 빡빡하지만 힘든 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를 찾아주는 데가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황금의 제국’을 거론하며 작품에 대한 만족감부터 표시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추적자’(SBS)가 좋은 작품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작품 만든 감독(조남국 PD), 작가(박경수) 선생님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니 출연 제의 받자마자 ‘오케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거기다 손현주(48) 형이나 박근형(73) 선생님이 출연한다는 점도 좋았고요.”

극중에서 그는 성진그룹 창업주 최동성 회장의 장남 최원재 역을 열연하고 있다. 최원재는 욕심은 많지만 어수룩한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 얘기에 매번 휘둘린다. 하지만 재벌가 장남이라는 위치 때문에 여타 인물들이 기업 경영권을 두고 싸움을 벌일 때 종종 ‘캐스팅 보트’를 쥔다.

“최원재는 한심하고 단순한 인물이죠. 연기를 하면서도 참 무능하고 답답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해요. 독특한 사람인 만큼 최대한 대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본이 훌륭한 드라마잖아요?”

실제로 ‘황금의 제국’은 주옥같은 대사로 매회 화제를 낳는다. 적재적소에 꽂혀 있는 비유와 상징은 여타 드라마에선 찾기 힘들었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엄효섭은 “배우들끼리 대사 연습을 할 때마다 대본 보며 놀랄 때가 많다. 작가님이 천재인 거 같다”고 거듭 말했다.

어린 시절 내성적인 아이였던 그가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서울 서라벌고)에 들어가면서부터다. 1학년 때 단역인 ‘병사1’로 처음 무대에 섰던 순간을 그는 아직 잊지 못한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한 그는 1990년 뮤지컬 ‘캣츠’를 시작으로 주로 연극 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갔다.

그가 몸담았던 극단도 여러 곳이다. ‘전설’ ‘은행나무’ ‘76’ ‘골목길’….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연간 수입이 200만∼300만원밖에 안 됐지만 연기의 끈을 놓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 2006년 영화 ‘로망스’, 이듬해 드라마 ‘히트’(MBC)에 출연하며 엄효섭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우 말고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연극 무대는 저한테 여전히 신성한 장소이고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내뱉는 대사에 관객들이, 혹은 영화나 드라마 스태프들이 조용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매번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무슨 역할을 맡고 싶은지,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지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어떤 역할이든 ‘작품에 참여한다’는 게 내겐 중요할 뿐”이라고 부연했다.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혹은 연기 지망생에게 엄효섭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러했다.

“제가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한 우물만 파라, 천천히 때를 기다려라, 네 스스로 너의 신념을 증명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결국엔 너를 찾아올 것이다.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