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여의도 정치와 대통령

입력 2013-08-29 17:24


여의도 정치와 청와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가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유착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입법 지원이 필요한 만큼 양측이 소원해져도 곤란하다는 뜻일 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의도 정치를 잘 아는 대통령도 있었고, 잘 몰랐던 대통령도 있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전자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자에 속한다. YS나 DJ는 가신(家臣)들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여의도 정치에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던 데 반해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친노(親盧·친노무현)와 친이(親李·친이명박)계 기반이 강하지 못했다. 더욱이 YS와 DJ는 집권당 총재를 겸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움직였지만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평당원에 불과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불신하고 멀리하게 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보궐선거로 등원해 15년간 국회에 몸담았다. 그동안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여러 차례 위기국면에서 당을 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만큼 여의도 정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대통령이다.

정기국회 개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청와대와 민주당은 여전히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국정원 수사까지 더해져 정치권의 향방은 안갯속이다. 다음달 2일 개회하는 정기국회가 초반부터 파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국 정상화를 위한 회담의 필요성은 서로 인정하면서도 형식과 의제를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국정원 수사에 강력 반발하고, 민주당도 국정원이 개혁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이석기 수사’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9월 위기설, 전월세 대란 등 나라 안팎으로 현안이 산적해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계속 과거 이슈에만 매몰돼 있을 수는 없다. 국가경제를 살피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그러자면 경색 정국을 풀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이 국가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지난 대선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유죄 여부는 단정할 수 없지만 대선 정국에서 보여준 국정원의 행태는 적절치 못했다. 따라서 국정원의 댓글 의혹은 반드시 규명하고, 나아가 국정원의 선거 및 정치개입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야당도 전략적으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등 청와대가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접어야 한다. 대신 청와대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분명한 의지 표명과 국회 국정원 개혁 특별위원회 설치 등 야당의 합리적 주장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 양측이 양보하고 대화하면 경색 정국을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를 잘 아는 박 대통령이 ‘알면서도 져주는 식’으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 정국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기국회 파행이 길어지면 민생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