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역사를 생각한다

입력 2013-08-29 17:23


“역사 속의 어느 하루가 개인의 인생과 민족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너희는 그 하루를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그러니 오늘 8월 29일, 76년 전의 그 하루를 꼭 기억해라.” 중학교 3학년 2학기 첫 국사시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사뭇 비장했던 그날, 선생님은 경술국치를 가르쳐주셨고 나는 프란츠와 같은 심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빼앗긴 들에 다시 찾아온 봄을 기뻐하며 권선징악의 통쾌함으로 그들의 패망을 기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빼앗긴 날의 참담함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라고. 빼앗긴 날, 빼앗긴 이유를 저들은 잊었을지언정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고. 그래야 소 잃고 고친 외양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며칠 전, 2017년부터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방침이라는 기사를 봤다. 이에 대해 사회과 과목의 형평성 문제와 사교육 과열에 대한 걱정, 학생들의 학업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심정적으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부르는 것이 고작인 아이들을 보면 위기감이 느껴진다. 더 이상 이런저런 지엽적인 이유로 미뤄둘 수 없는 백년지대계인 것이다.

물론 대학입시를 통해 역사인식을 바로잡겠다는 발상에는 찬성할 수 없다.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고 굳이 시험을 통해 역사에 대한 생각을 심어줄 요량이면 고교 졸업시험으로 논술시험을 보는 것이 맞지 싶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12년간의 정규 교육을 마친 이 나라 국민으로서, 자국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또 몇 번이라도 통과될 때까지 보는 시험이었으면 좋겠다. 포기하고 방치해서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시험이 아니라 끝까지 가르치겠다는 의지로 아이들과 함께 노력하는 시험이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초·중 과정과 고교 과정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조선 중기 역사를 반복해서 외우는 것보다는 ‘목민심서’ 한 권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낫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거울이다. 주변국과의 역사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명확히 알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끊임없이 역사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 이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공부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