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가 바보 웃음을 짓는 까닭은… 김신용 시집 ‘잉어’

입력 2013-08-29 17:05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고 했던가. 가을 전어를 대하는 시인 김신용(68)의 언어가 갑자기 식욕을 돋운다. “참, 동전 짤랑이는 것 같기도 했겠다/ 한때, 짚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구워지던 것/ 비늘 째 소금 뿌려 연탄불 위에서도 익어가던 것/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이면 錢魚라니-/ (중략)/ 바다 속에서, 가을 벌판의 억새처럼 흔들리는 저것들을/ 참, 동전 반짝이는 모습처럼 비쳐 보이기도 했겠다”(‘전어’ 부분)

어부의 그물에 걸려 지상에 올라온 전어의 짤랑거리는 은빛 비늘을 가을 벌판의 억새 흔들리는 모습으로 그려낸 솜씨라니. 어디 전어뿐이겠는가. “저 물의 만년필,/ 오늘, 무슨 글을 쓴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 없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를 쓴 것 같은데 읽을 수 없다/ 지느러미 흔들면 물에 푸른 글씨가 쓰이는, 만년필”(‘잉어’ 부분)

김신용의 신작 시집 ‘잉어’(시인동네)는 시 ‘전어’나 ‘잉어’에서 보듯, 어휘가 지시하고 있는 사물의 본질을 촌철의 눈으로 풍자해 내는 높은 은유의 경지를 보여준다. 단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은빛 동전처럼 반짝이는 ‘전어’와 가을 푸른 물속에서 붓처럼 꼬리를 흔드는 ‘잉어’의 이미지가 단박에 그려지지 않는가.

시집엔 유독 ‘자라’ ‘벼리’ ‘여우비’ ‘토마토’ ‘붓꽃’ ‘양파’ 등 자연의 동식물들이 시적 대상으로 등장한다. 흔히 자연과 인간사의 비교는 무상감을 일으키지만 김신용의 시에서 자연은 경탄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그 시적 대상들은 자연 속에서 혼자 너무 쓸쓸한 탓에 시인이게 기왕이면 ‘경탄’으로 써달라고 주문하는 것만 같다. “태양의 과일이라는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고 채소라는 말을 들으니, 몸속에/ 수평선이 돋는 느낌이다/ (중략)/ 모든 것이 익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저녁의 시간/ 우리는 융합된 그 부드러운 질감의 순간을, 저녁의 시간이라 부르면 된다”(‘토마토’ 부분)

시집 어디를 펼쳐도 시인의 직관은 절망보다는 희망으로 기울고, 마침내 기울어서 빛난다. “사람들은 탁하고 더러워진 물에 일부러 미나리를 심는다/ 미나리를 심으면, 물고기가 죽어 둥둥 떠오르는 물은 맑게 걸러지고/ 물고기는 눈을 뜬다 수초들도 혼절에서 깨어난다/ (중략)/ 미나리는, 웃는다/ 제 멋에 겨운, 바보처럼 웃는다/ 이 세계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바보처럼”(‘미나리는, 웃는다’ 부분)

탁하고 더러워진 세계의 한 복판에 심겨져 있으면서도 천성을 잃지 않은 미나리의 바보 같은 웃음이라니. 고난에 대한 인내도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경지는 놀라운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연민일 터이니, 가을 전어를 굽기 전에 서둘러 김신용의 시집을 읽어볼 일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