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우상 실비아 플라스 詩전집 국내 첫 출간
입력 2013-08-29 17:05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선구적인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사진) 50주기를 맞아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한국어판(마음산책)이 출간됐다. 1980년대부터 그의 대표 시 ‘거대한 조각상’ ‘아빠’ ‘나자로 부인’이 국내에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전집은 국내 첫 출간이다. 여덟 살 때 처음 ‘보스턴 헤럴드’에 시 작품을 실을 정도로 문학적 천재성을 드러냈지만 31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삶은 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실비아’(2005년)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플라스의 전 남편인 영국 계관시인 테드 휴스가 1981년에 엮어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집은 플라스 생전에 출판된 시집 ‘거대한 조각상’과 사후 출간된 시집 ‘에어리얼’ ‘호수를 건너며’ ‘겨울나무’에 수록됐던 시를 모두 망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56년 이전에 쓴 습작시 50편도 수록하고 있다.
역자인 박주영 순천향대 영문과 교수는 “그동안 다수의 남성평론가들이 그의 자살을 상기하며 가부장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내면화됐다고 여겨지는 피해의식을 부각해 그의 시 세계를 논해 왔다”며 “이처럼 왜곡된 시각을 지닌 남성 비평가들의 자의식적인 분석은 플라스를 마치 대중 드라마에 등장하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독자에게 소개해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흔히 현대시에서 ‘분노의 시학’을 논할 때 플라스의 시가 거론되지만 작품 전체를 검토해보면 그는 남성적 폭력성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여성주의 경향의 시보다는 서구의 여러 전통시 형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시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을 꺼낼 수 있나?/ 무엇보다 나를 섬뜩하게 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 저 소음이다/ 마치 로마 군중 같다/ 하나씩 치면 적지만 함께 뭉치면 맙소사!// 내 귀를 소란스러운 라틴어에 갖다 댄다./ 나는 카이사르가 아니다./ 단지 미치광이들이 든 상자를 주문했을 뿐이다”(‘벌 상자의 도착’ 부분)
플라스가 자살하기 직전 영국에서 출간된 자전적 소설 ‘벨 자(The Bell Jar)’ 개정판도 함께 출간됐다. ‘벨 자’는 종 모양으로 빚은 유리 단지를 뜻하는 말이다.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평생 숨 막히는 밀폐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저자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압축적으로 나타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