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섬에서 벌어지는 인간 탐욕의 드라마
입력 2013-08-29 17:04
이나미 연작소설집 ‘섬, 섬옥수’
살면 살수록 줄어드는 땅이 있다. 섬이다. 섬에 인간의 욕망이 개입하면 섬은 옛 풍광을 잃고 줄어든다. 줄어들어서 마침내 감옥이 된다. 이때 섬이 인간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느끼는 것은 신체적 사유에 해당할 것이다.
올해 등단 25년을 맞은 소설가 이나미(52)의 연작소설집 ‘섬, 섬옥수’(자음과모음)는 줄어드는 땅, 섬에 대한 일곱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경은 마라도를 연상케 하는 한반도의 남단 땅끝섬. 하지만 소설적 공간으로 재현된 땅끝섬은 어떤 특정한 섬을 지칭하지 않고 위도 경도의 지리적 경계를 이탈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제목 ‘섬, 섬옥수(纖獄囚)’의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섬이 왜 인간을 가두는 감옥인가가 소설의 주제랄 수 있겠는데, 땅끝섬이 돈과 이권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섬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언제부터 땅끝섬의 명물이 골프카와 짜장면이 됐는가. 섬에 처음 오는 관광객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즐비하게 늘어선 골프카 운전사들의 밀고 당기는 호객에 정신을 빼앗겨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섬, 섬옥수 5’ 부분)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들자 돈을 벌어보겠다고 들어온 외지인들과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깊어진다. 원주민들은 외지인들을 ‘뭍 것들’ ‘육지 것들’이라 배척하고, 외지인들의 눈에 마을자치회장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막무가내로 제 잇속만 차리려 드는 기득권 패거리들로 보일 뿐이다.
여기에 골프카와 함께 들여온 족보 있는 개들의 운명은 애잔한 서글픔마저 자아낸다. “처음에 마을 사내들은 경쟁심에서 질세라 족보 있는 비싼 개들를 들여왔지만 섬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방목했다. 개들은 어디 누구네 집 개로 살아가되 먹는 건 스스로 해결한다. 관광객들에게 앵벌이로 목숨을 부지하든 말든 주인들은 개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다 적당히 살이 오르면 잡아먹힌다.”(‘섬, 섬옥수 4’ 부분)
그런 아비규환의 섬이 어느 날 완전히 변한다. 유람선이 도착하면 관광객에게 들러붙던 골프카 운전수와 꼬리치며 겅중대는 개떼도 보이지 않는다. 관할 서귀포시가 보다 못해 정화의 칼을 뽑아든 것. 중고차 보상 차원에서 골프카를 시 예산으로 사들이고 불법건축물엔 최고장이 발부된다. “무법천지였던 섬에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화사한 옷차림의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등대 밑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골프카 대신 조용히 걸어서 돌아다니니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한가하고 본래의 섬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섬, 섬옥수 7’ 부분)
이나미는 “2006년 여름, 마라도에 한 달간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서너 대뿐이던 관광용 골프카가 나중엔 80여 대로 늘어나면서 섬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의 품성이 환경과 조건에 의해 어떻게 지배당하고 좌충우돌하는지,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을 통해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