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호조태환권
입력 2013-08-28 19:21
한국 최초의 근대 지폐는 호조태환권(戶曹兌換券)이다. 고종 29년(1892년) ‘신식화폐조례’가 공포됨에 따라 구(舊)화폐를 신(新)화폐로 교환해 구화폐의 회수를 목적으로 만든 환표다. 화폐의 교환업무를 맡은 태환서는 서울 종로 광교 부근의 한옥에 설치돼 50냥, 20냥, 10냥, 5냥의 액면을 가진 호조태환권을 제조해 구화폐와 교환한 뒤 신화폐의 주조량이 충분하게 되면 다시 신화폐와 교환·환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폐를 찍어낼 원판을 제작했던 조폐기관인 전환국이 일본의 방해로 운영에 차질을 빚으며 호조태환권은 제조만 됐을 뿐 공식 발행되지 못한 채 대부분 소각됐다. 희소성 등의 이유로 2010년 10냥 지폐 1장이 925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는 4종류의 호조태환권 원판 가운데 3종류 12점만 남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50냥 10냥 5냥 등 3종류의 원판 11점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50냥 원판 1점이 소장돼 있다.
덕수궁에 보관돼 있다가 6·25전쟁 때 해외에 무단으로 유출됐던 호조태환권 10냥의 앞면 인쇄 동판(원판)이 60여 년 만에 국내로 환수된다고 한다. 가로 15.875㎝, 세로 9.525㎝에 무게 0.56㎏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가운데 ‘십냥(拾兩)’이라고 크게 보이고, 아래에 대한제국 이전에 채택하려 했던 ‘대조선국(大朝鮮國)’의 국호를 써서 ‘대조선국전환국제조’라고 적혀 있다. 중간 부분 양옆으로는 ‘호조’와 ‘태환서’가 세로로 돋을새김(양각)돼 있다. 하단 양 옆으로 ‘이 환표는 위조나 변조한 자, 위조와 변조를 알고 통용하는 자 있으면 엄형 처단하리라’라는 경고문구를 넣었다. 지폐 장식문양은 조선의 왕실을 뜻하는 세 발톱을 가진 용 두 마리와 꽃들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이 원판은 참전 미군 라이오넬 헤이스가 1951년 혼란을 틈타 불법 유출하며 종적을 감췄다가 2010년 그의 유족이 미국 미시간 주 소재 경매회사에 처분을 의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3만5000달러(약 3900만원)에 낙찰 받은 재미교포 고미술 수집가 윤모(54)씨가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지난 1월 붙잡히면서 회수에 길이 열린 것이다.
임진왜란, 구한말, 6·25전쟁 등 혼란기에 해외로 빠져 나간 소중한 문화재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이제라도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불법 유출 문화재의 현황파악을 서두르고 더 늦기 전에 환수에 나설 필요가 있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