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진숙경] 정규직노조 양보를 위한 전제조건
입력 2013-08-28 19:20
“조합의 희생이 전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시스템 마련돼야”
최근 한국 노동조합의 현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10%밖에 안 되는 노조조직률로 과연 노동자 전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1.7%(2012년 통계청 자료로 추정)인데, 과연 노조가 우리 사회 약자들의 편에 제대로 서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런 조건에서 노조가 자기 조합원 챙기기에만 주목한다면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차, 기아차 지부 파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건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이 ‘합법적인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정규직 중심인 현재의 노동법 하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변화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노동법의 잣대를 가지고 불법파업 이라며 ‘법대로 엄정 대응’ 원칙을 얘기한다. 반대로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할 때는 합법을 따지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경제의 손실, 이기적’ 등등의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이중 잣대 앞에 노동조합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가계부채가 늘고 일자리가 없어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높은 이윤 창출에 기여한 노동자들이 자기 몫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우리 사회는 대기업이 형성한 이윤을 기업 내부 노사 간의 나눠먹기 잔치로 끝내지 말고 사회가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경제 정책적으로나 소비자로서의 국민들의 기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들의 양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임원들의 양보와 고통 분담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공기업을 제외한 상위 10대 기업의 직원과 임원의 보수 격차가 평균 21.7배라고 한다. 직원 1인당 평균 임금이 7894만원인데 비해 임원의 평균 보수는 17억1320만원이라는 것. 평균 임금 7800만원 임금근로자에게 양보하라고 하면서 17억1300만원을 받는 임원들은 어떤 양보를 하고 있나?
중산층인 정규직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고위층들의 가시적인 양보가 먼저 실천돼야 할 것이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일부 계층의 지나친 고소득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이를 규제하려는 제도를 마련 중이다. 스위스의 경우 기업 내 최하위와 최상위 연봉 격차가 12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을 마련하고 주민투표를 앞둔 상황이다.
또 정규직들의 양보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정규직의 양보가 자칫 원청 자본이나 하청업체 사장들의 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한다면 양보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위해 본인 몫을 양보하더라도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정규직화하지 않고 있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데 그 비용을 쓸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선망하는 북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산업이나 기업의 이윤이 실업자, 비정규직들의 고용 유지 및 재교육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하는 주체는 정부다.
진정으로 이들의 양보를 원한다면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사용자들의 양보를 전제로 한 정규직의 양보를 실현하고 이러한 양보가 한 기업 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 성원들에게 그 영향이 미치도록 전달 벨트를 마련하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용자의 양보와 대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되돌려 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규직에 대한 양보 요구는 현실성 없는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의 이해관계에만 주력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진숙경 (성균관대 HRD 센터·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