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기독교계 학교 여학생·병원 간호사들 “대한독립만세” 앞장

입력 2013-08-28 19:02


3·1운동 헌신한 여성기독인

3·1운동에 헌신한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충남 천안의 매봉교회를 섬긴 유관순 열사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 크리스천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배화여학교 등 서울에 있는 기독여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은 YMCA 등 기독단체와 함께 3·1운동을 준비했으며, 이화학당은 이들의 비밀 회합 장소로 이용됐다. 이곳에서 1919년 3월 1일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복사했고 만세시위 전략을 짜기도 했다.

만세시위가 확산되자 조선총독부는 휴교령을 내렸다. 그러나 3월 3일 개성의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독립가’를 부르며 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들의 용기에 힘입어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2000여명으로 불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선 3월 11일 주경애(여)를 비롯한 교사들 주도로 만세시위가 시작됐다. 여기에는 일신여학교 학생뿐 아니라 부산진교회 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는 4월 초 부산 일대의 만세시위로 번졌다.

경남 진주의 만세운동은 기독교계 배돈병원 간호사와 광림학교의 기독학생들이 주도했다. 이들이 앞장섰던 만세시위에는 장날 인파까지 가세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평양 숭의여학교, 전주 기전여학교, 광주 수피아여학교, 대구 신명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등의 기독여학생들도 독립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 크리스천도 있다. 일본 동경여학원에 다닌 김마리아는 동경유학생 독립단에서 활동했고 1919년 2·8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해 2월 15일 국내에 들어와 동맹휴학을 추진했고 3·1운동을 준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김경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