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압수수색] 궁지몰린 국정원의 반격 대형 변수에 정치권 발칵
입력 2013-08-28 18:36 수정 2013-08-28 22:40
국가정보원이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정조준한 대형 공안사건이 터지면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이번 사건이 ‘국정원 셀프 개혁안’의 국회 제출을 앞두고 터졌다는 점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조직보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이 터진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정원은 다음주쯤 국내 정보 파트의 정치 관여 소지를 없애고, 대신 방첩 및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새누리당은 이를 지지했지만 민주당은 대공수사권과 국회·정당·언론사 등 기관 상시 출입 폐지 등을 주장했다. 국정원 예비비 폐지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만일 민주당안대로 개혁이 추진되면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는 통째로 도려내질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 의원에게 내란음모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입증할 경우 대공수사권 폐지 주장은 설득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또 기관 상시 출입 등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의 중요성도 부각시킬 수 있다. 향후 이 의원의 간첩행위가 드러나고 여론이 악화되면 민주당이 요구하는 강도 높은 국정원 개혁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3년간 수사를 했다는 국정원의 설명 뒤에 담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은 예상치 못한 ‘악재’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배재정 대변인은 “국회에까지 들어와 현역 의원을 상대로 압수수색하는 사태를 엄중히 지켜본다”고 논평했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선 깊은 숲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워야 할 판”이라며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긴장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댓글 의혹 청문회를 성사시키는 등 국정원 개혁을 단단히 별러왔으나 자칫 이번 사태로 장외투쟁의 동력까지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충격을 넘어 공포감마저 느껴진다”면서 “사실이라면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종북, 친북세력의 이적활동을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지도부는 오전 일찍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사실을 통보받았으나 언론이 보도할 때까지 함구했다.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게 가미되면 현 정부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며 “수사를 지켜볼 뿐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사실일 경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나 발언은 알려지지 않았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