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압수수색] 역대 내란음모 사건은… 33년전 ‘김대중 사건’ 후 처음
입력 2013-08-28 18:28
국가정보원이 28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적용한 혐의는 ‘내란음모죄’다. 수사당국이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해 수사에 착수한 것은 33년 만이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종종 등장했던 내란음모 혐의는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등장하지 않았다. 일심회·왕재산 사건 이후 정치인이 연루된 가장 큰 공안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33년 전 DJ 이후 처음, 군부 시절엔 악용=‘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고(故) 김 전 대통령 등 민주세력 인사 24명을 지목하면서 진행됐다.
내란음모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진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부 결정에 따라 징역 20년까지 감형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2년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0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연루된 문익환 목사 등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과거 내란 관련 죄는 유신독재와 5공화국이 당시 민주화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대부분 악용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소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불리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는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의 배후가 인혁당 재건위라고 발표하면서 도예종 등 23명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도예종 등 8명에 대해서는 사형이 선고됐고, 판결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이외에도 1960∼80년대 수사당국은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을 비롯, 각종 집회·시위 주동자를 내란죄로 기소했다. 일부는 재판 과정에서 내란죄를 적용하는 대신 예비적 혐의인 집회시위 관련 법률이 적용됐고, 내란죄를 적용받은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씨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 혐의로 기소됐고, ‘신군부’에 맞서다 체포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내란방조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내란음모 혐의로 진행된 재판은 없었다. 다만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기소돼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 노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심에선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돼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일심회·왕재산 이후 정치 연루된 대형 공안사건=음모나 예비 혐의까지 처벌하는 규정은 형법상 많지 않다. 살인이나 강도 등 비교적 무거운 죄에 대해 음모·예비 행위를 처벌한다.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강한 법 조항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이번 압수수색 혐의와 관련, 약 3년 가까이 내사를 진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정치인이 연루된 공안사건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일심회, 왕재산 사건의 경우에도 내란음모죄까지는 가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다.
2006년 10월 적발된 ‘일심회’ 사건은 386 출신 정계 인사들이 연루된 대표적인 간첩 사건이다. 최기영 민주노동당 전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이 북한에 국내 특정 정당의 선거동향 등이 담긴 사업보고서 등을 제공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중국에서 북측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검찰은 2011년 8월 ‘왕재산 사건’을 수사하면서 간첩 혐의를 적용했다. 총책 김모씨 등은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아 지하당을 만든 뒤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1993년 8월 김일성 당시 주석으로부터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 전파’ 등의 지령을 받아 ‘왕재산’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후 김씨 등은 북한 공작원들과 수시로 접선하면서 국내 정보를 수집·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 등은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 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