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수현] 八日之小計로 끝난 ‘거점학교’

입력 2013-08-29 05:08


일반고 우수학생들을 모아 특목고 수준의 영어·수학을 가르치겠다던 서울시교육청의 ‘거점학교’ 정책이 ‘팔일지소계(八日之小計)’로 끝나고 말았다. 2학기부터 일반고 성적 우수학생을 위해 영어·수학 심화과목을 가르치는 거점학교 11곳을 지정하기로 한 정책을 발표한 지 8일 만에 철회하면서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무색하게 했다. 현장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밀어붙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없던 일’로 만들며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모습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문용린 교육감 당선 직후 핵심 공약인 자유학기제를 폐기하기로 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등 주요 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했었다.

이번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갈지자 행보를 반복했다. 시교육청은 지난 20일 거점학교의 도입 효과로 “일반고 우수학생은 특목고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고교교육력제고 거점학교’에서 과학고 수준의 수학, 외고 수준의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교총이나 전교조 등으로부터 “우수학생을 위한 심화수업은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 “공교육기관이 우열반을 만들어 ‘특별과외’를 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공교육을 파행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수준에 맞는 맞춤형 수업으로 위화감보다는 만족감이 더 클 것”이라며 귀를 닫았다. 심지어 지난 26일 문용린 교육감 주재의 간부회의에서는 “(고교교육력제고 거점학교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으니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자”고 내부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이 얼마나 현장의 분위기와 비판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손을 들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정책 발표 전에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정책 발표 후 전체 의견을 들어보니 현장 적용에 무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선 “차라리 교육당국이 아무 일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정권과 현 정권, 지난해와 올해, 심지어 지난주와 이번 주의 교육정책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기 때문이다. 대입제도가 자주 바뀌고 교육정책이 방향을 잃으면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김수현 정책기획부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