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웨스트 포인트처럼 하라
입력 2013-08-28 17:42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 포인트’는 미국 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의 최고 10대 대학에 매년 이름을 올린다. 2009년에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2009년 5월 미 국무부 초청 프로그램 참석 중 잠시 웨스트 포인트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허드슨 강을 끼고 있는 교정 곳곳에 이 학교 출신 인물의 동상이 서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가리키면서 그의 어머니가 대단한 ‘헬리콥터 맘’이었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 맘이란 자녀 옆에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를 의미한다. 맥아더가 2번이나 고배를 마신 뒤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군인인 남편과 다른 가족을 텍사스에 남겨놓고 웨스트 포인트 인근 작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들이 재학 중인 4년간 그녀는 밤마다 아들의 학업성과를 점검했다고 한다. 맥아더는 1903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2차 세계대전 시 기갑전의 영웅이라는 평을 받았던 조지 패튼 장군의 동상은 1950년 옛 도서관 앞에 자리잡았다. 학교 관계자는 패튼 장군이 사망한 뒤 부인에게 동상 위치를 물었더니 “남편이 1년 낙제를 했던 만큼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도서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패튼은 수학에 낙제해 5년 만에 졸업했다. 두 장군의 이야기는 웨스트 포인트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방증해준다. 학교 관계자는 “생도들 사이에는 ‘지옥이 웨스트 포인트보다 좋은 5가지 이유’라는 유머가 돌기도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곳이 처음부터 훌륭한 학교였던 것은 아니다. 1802년 설립 당시 생도들의 무단결석은 비일비재했고 총기사고도 빈발했다. 심지어 매춘부들이 교내에서 영업하기도 했다. 이 학교가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은 5대 교장 실버너스 세이어 대령 때다. 세이어 교장은 훈육관직을 신설해 생도들의 생활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생도들의 일과를 세밀하게 짰고 흡연 음주 도박 소설책읽기 카드게임 등 비행소지가 있는 일은 모두 중단시켰다. 공부할 부분을 먼저 시험보고 그 뒤에 수업을 진행하는 독특한 학업 방식을 고안하기도 했다.
세이어 교장은 명예시스템도 도입했다. 생도들의 생활을 꼼꼼히 규제해 온 그였지만 생도들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그는 명예를 ‘생도가 지녀야 하는 가장 큰 재산’이며 스스로 명예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생도가 규정을 위반하면 해명을 들었고 수용했다.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 가차 없이 퇴교 조치됐다. 지금도 웨스트 포인트에서는 학업 관련 부정행위나 절도 등으로 매년 100여건의 명예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중 10% 정도가 퇴교 조치를 당한다.
웨스트 포인트도 많은 고민을 해왔다. 개교 초기부터 시작된 ‘신입생도 괴롭히기’ 관습 근절은 역대 교장들의 숙원 과제였지만 번번이 실패한 뒤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사라졌다. 여생도 입학 이후 성기율위반 문제도 적지 않았고 마약복용 문제도 불거졌다. 사회규범과 지나치게 괴리된 낡은 규제를 고집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웨스트 포인트가 이런 비판에도 매년 최고 교육기관으로 선정되는 것은 규제와 자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미군뿐 아니라 미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생도들의 일탈행위로 비판을 받고 있다.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미봉책이라는 힐난을 받았다. 육사는 올해 초 교육체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급히 마련된 혁신책은 규제일변도로 변했다. 미 육군 존 스코필드 소장은 “전투에 임했을 때 믿을 만한, 자유로운 국가의 군인을 양성하는 규율은 가혹한 취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육사는 규제와 자율성을 조화시킨 웨스트 포인트의 사례를 꼼꼼히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