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정임] 이스탄불과 경주의 동행

입력 2013-08-28 17:37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나는 지금 결혼을 앞둔 신부처럼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2013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의 개막을 축하하는 공연이 31일 오후 8시 터키의 유서 깊은 아야소피아 앞 특별무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터키와 한국 두 나라의 예술가들이 ‘오랜 인연-꽃이 피다’라는 주제를 함께 펼쳐 보이니 어찌 잠인들 제대로 들 수 있으랴.

이번 공연에서 총괄안무를 맡은 나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제1회 엑스포에서는 전야제 안무를, 2회와 3회에서는 개막공연 안무를 맡았다가 이스탄불로 이어졌다. 여고시절까지 반월성을 바라보며 자란 경주 출신의 춤꾼으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금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이스탄불은 나에겐 꿈의 도시이기도 하다. 국립무용단 단원 시절 이스탄불 공연을 가진 나는 순식간에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문화를 간직한 포용력에 마음이 넉넉해진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 내가 안무한 작품을 이곳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꿈은 현실을 이기는 힘이 있다.

안무를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정동극장 예술단과 함께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이겨가며 연습실에서 땀을 흘렸다. 안무 작업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6월과 7월 두 차례 이스탄불을 방문해 터키 예술가들과 대화하면서 작품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24일부터는 아예 이스탄불로 자리를 옮겨 터키 예술가들과 전체 연습에 들어갔다. 오랜 형제의 나라여서 그런지 호흡이 척척 맞아들어갔다.

개막 축하공연에는 표재순 박범훈 김충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이방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멋지게 만들기 위해 매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나 또한 단순한 행사가 아닌 양국의 문화유산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표현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길, 만남, 동행이라는 주제를 두 나라의 신체언어로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게 어디 보통 미션인가.

한때 세계 4대 도시로 손꼽혔던 콘스탄티노플과 서라벌, 고대 동서양을 연결한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었던 이스탄불과 경주. 세계사적으로 흔치 않은 천년고도의 만남이 이번 문화엑스포의 의미다. 나 역시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용서와 화해, 사랑과 평화라는 의미에 용해시켜 ‘오랜 인연-꽃이 피다’에 담았다.

개막 축하공연은 1000년 전 터키의 청년 ‘아흐멧’이 꿈에서 본 황금의 나라와 소녀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라 소녀 ‘랑’은 바닷가에서 지쳐 있는 아흐멧을 발견하고 생김생김을 흥미롭게 쳐다본다. 그러는 사이에 신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고 터키 청년 아흐멧과 이를 극복해가며 사랑을 키워나가다 결혼에 이르는 스토리다.

터키는 유럽, 중동, 아시아 3각 교차점이다. 여기에서 한국 문화의 원형을 선보인다는 것은 한국 문화의 세계성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다. 길은 만남을 낳고, 만남은 동행으로 이어진다. 기나긴 길을 함께 가는 동안에 우정과 믿음이 싹트고, 아흐멧과 랑처럼 사랑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국민 여러분들의 박수가 이곳 이스탄불까지 닿는다면 오랫동안 기다렸던 동서양 문화 교류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고, 수많은 아흐멧과 랑이가 새롭게 펼쳐진 실크로드를 즐겁게 오갈 것이다.

최정임 전 정동극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