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 인재진 “폭우속 3000여명 열광하는 것 보고 성공 직감”
입력 2013-08-28 17:12
북한강이 품은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은 70년 전인 1943년 청평댐이 준공되면서 생겨났다. 하지만 섬의 존재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불과 10년 전부터다. 2004년을 시작으로 매년 열리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약칭 자라섬)은 이곳을 ‘한국의 뉴올리언스’(미국 재즈의 고향)로 만들었다.
현재 ‘자라섬’은 국내외 음악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아시아 최고·최대 규모의 재즈 축제다. 매년 ‘자라섬’엔 국내와 해외의 재즈 뮤지션 500∼600여명이 출연한다. 지난해까지 동원한 누적 관객 수는 무려 100만여명에 달한다. 음악 페스티벌의 롤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자라섬’은 10월 3∼6일 열린다. 퓨전재즈의 거장인 미국의 리 릿나워(61)와 ‘재즈 한류’의 아이콘 나윤선(44) 등이 출연한다. 통상 사흘 정도 열리던 행사가 올해엔 하루 더 늘어나면서 주최 측은 올가을 30만명 넘는 재즈 애호가가 가평을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6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자라섬’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인재진(48) 감독을 만났다. 1회 때부터 ‘자라섬’ 행사를 총괄해 온 그는 가평 군민들과 함께 ‘자라섬 신화’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자라섬’이 올해 10회째를 맞는다. 소감이 남다를 거 같은데.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관객들, 자원봉사자들, 가평 군민들…. 많은 사람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행사를 도왔다. 특히 ‘자라섬’ 1회 때는 돈이 없어 고생했는데, 가평군 과장이나 계장, 주사들이 1500만원씩, 2000만원씩 지인들한테 돈을 꿔 나한테 맡겼다. 고마운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페스티벌의 가장 큰 성공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야외에서 노는 문화가 생겨났다. 마침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누워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즐기는, 해외 페스티벌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라섬’은 이러한 대중의 니즈(Needs·수요)를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만족시켜준 행사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 음악 페스티벌이 거의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자라섬’의 성공을 처음 직감한 순간이 있다면.
“1회 행사를 할 때 이미 예상했다. 폭우 때문에 사실상 망할 수밖에 없는 페스티벌이었다. 그런데 억수처럼 퍼붓는 비를 맞으며 관객 3000여명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더라. 마치 록 페스티벌 같았다. 가평 주민들은 ‘우리 동네 같은 시골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웃음).”
-잊을 수 없는 무대도 많았을 텐데.
“한국 관객들 열정이 남다르지 않나. 2005년(2회) 출연한 (미국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맨(44)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관객 절반만이라도 미국에 데려가고 싶다고. 지난해 (미국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62) 무대 땐 관객들이 단체로 기타 연주를 허밍으로 따라 부르더라.”
-가평이 ‘재즈의 고장’으로 탈바꿈됐다는 얘길 들었다.
“가평 인구가 6만명 정도인 걸로 아는데, 군내에 생긴 재즈 밴드가 24개나 된다. 가평 읍내에 위치한 (일종의 재즈 교습소) ‘자라섬 청소년 재즈 센터’에 다니는 회원은 200명이 넘는다.”
인 감독은 재즈 보컬 나윤선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2005년 처음 만나 이듬해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2010년 결혼했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은 적다. 나윤선이 매년 80∼100회 가량의 해외 공연을 소화하느라 1년에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5개월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3년 정도 됐다.
“아내가 워낙 빡빡한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니 한국에 돌아오면 정말 전투적으로 쉰다. 이미 유럽에서 최고의 보컬로 평가받지만, 앞으로 더 진가를 발휘하는 뮤지션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내와 결혼한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