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은 킹 목사 명연설 ‘I Have a dream’ 50주년
입력 2013-08-27 18:58 수정 2013-08-27 22:35
킹 목사 못다 이룬 꿈 좇아 한국교회, 주님 사랑으로 100만 이주노동자를 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내면적 인격으로 판단되는 나라에 살 것이라는….” 1963년 8월28일 미국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인종 차별 반대를 촉구한 마틴 루터 킹(사진) 목사의 연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의 100만 이주민 노동자들의 또 다른 외침이기도 하다. 이주민·다문화 사역 현장에서 인종 차별과 인권 침해에 맞서 킹 목사의 못다 이룬 소망을 일궈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이주민 사역 현주소를 짚어봤다.
◇한국 땅에서 영그는 킹 목사의 꿈= 27일 아침 미자노르(23·방글라데시)씨는 갑자기 배가 아파 공장에 출근하지 못했다. 공장 기숙사에서 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경기도 오산 다솜교회가 운영하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았다. 센터에서는 만난 그는 “여기서 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웃었다.
미자노르씨는 2년 전 한국 땅을 밟았다. 어렵사리 건설 노동일을 구했지만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폭언에 시달렸다. 참다 못해 뛰쳐나와 찾은 곳이 오산이주노동자센터다. 그는 직업을 구할 때까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센터를 운영하는 다솜교회 오영미(54) 장창원(55) 목사 부부의 도움으로 새 일자리(난로공장)를 찾을 수 있었다.
미자노르씨처럼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이주민들은 300여명. 1991년 설립된 다솜교회는 도시빈민선교에 주력하다 2003년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설립하면서 본격 이주민선교에 나섰다. 이주노동자 및 여성 모임을 조직한데 이어 가정폭력으로 피신해 온 여성결혼이주민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다.
2004년부터는 이주노동자센터 부설로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비영리 어린이집도 문을 열었다. 2010년 오산시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어린이집에는 필리핀과 네팔, 방글라데시 등 5개국 이주노동자의 자녀 2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집 손숙자(53) 원장은 “대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심신이 지쳐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이 아이답게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주민 돕기 선봉에 선 교계=국내 이주민선교 사역은 1990년대 초 복음주의 진영의 전도 및 선교활동이 시초였다. 1991년 중국교포선교협의회는 서울역 앞의 한약재 상인(중국교포)들을 대상으로 중국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11월에는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데 이어 93년과 95년 각각 교계가 중심이 된 ‘외국인노동자선교정책협의회’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등이 꾸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현 안산이주민센터) 등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차별과 인권탄압 속에서 “우리도 사람입니다” “때리지 마세요” 라고 호소할 때 한국 교회가 곁에 있었다. 한국교회의 이주민 사역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고용허가제 도입(2004)과 다문화가족지원법 도입(2007) 등에 디딤돌이 됐다. 한국에서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이주노동자 중에는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선교에 나선 이들도 적지 않다.
◇“이주민 위한 법·제도 개정에 박차 가할 때”=한국교회희망봉사단(한교봉)이 올 초 이주민 사역 기관 및 단체 270여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교회 이주민 선교 현황’에 따르면 이주민 선교의 형태는 교회 부설이 28.4%로 가장 많았고, 주된 사역 대상은 이주노동자가 31.6%로 최다였다. 이주민 선교단체 2곳 중 1곳(51.4%)은 수도권에 활동 중이며, 이주민 출신국가 분포(복수응답)는 중국(22%)이 가장 많았다. 이주민 사역단체의 여건은 녹록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민 업무를 담당하는 교회 및 선교단체 5곳 중 1곳(21%)은 실무자수가 1명에 불과했다. 자원봉사자 역시 5명 이하가 27%로 가장 많았다.
안산이주민센터 대표인 박천응 목사는 “반세기 전 킹 목사가 신앙적 양심으로 외쳤던 목소리가 인권운동의 역사를 바꾸는 단초가 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이주민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존중하고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데 지속적인 헌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찬 기자, 오산=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