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겨냥 ‘신뢰프로세스’… 朴, 야당에도 똑같이 적용?

입력 2013-08-27 18:23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상대로 5자 회담(대통령, 여야 대표·원내대표)을 고수하는 모습은 북한을 대상으로 내세웠던 원칙론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상호 신뢰부터 전제돼야 한다는 대일(對日) 외교도 연상된다. 결국 민주당이 5자 회담을 수용하기 전까지는 박 대통령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 민주당은 회담 형식을 두고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 언제든 만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민생을 논의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민생 관련 입법을 회담 주제로 다루기 위해선 여야 원내대표가 각각 회담에 참석하는 형식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지난 6∼7월 개성공단 사태를 풀기 위한 남북 당국회담을 두고 북한과 기싸움을 할 때도 회담 형식이 문제였다. 청와대는 당초 장관급 회담을 염두에 두고 국제적 스탠더드(기준)에 맞는 회담 대표끼리 만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자 우리 쪽에서도 차관급을 제시했고, 결국 회담이 결렬되는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청와대가 야권의 대선불복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은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고, 향후 계획도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가해자 입장에서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회담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 불복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3·15 부정선거를 거론하는 등 정권 정통성에 시비를 걸며 대선불복 논란에 줄곧 불을 지폈다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양자 회담부터 갖자는 민주당 주장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고,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정략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결국 야당에 대해서도 북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보여주기식 의례적인 만남을 할바에야 아예 만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겠다는 기조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9월 정기국회가 초반 파행을 겪는 상황까지도 감수할 태세다. 대통령과 야당의 회동이 9월 둘째주까지 이어지는 대통령 해외순방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하지만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회에서 민생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정국 대치가 길어질 경우 박 대통령과 청와대도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만들었다는 책임을 상당 부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