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조달 막막… ‘공약 가계부’ 줄줄이 축소 불가피

입력 2013-08-28 01:37


증세불가와 복지확대. 반대방향으로 뛰는 토끼 두 마리를 잡겠다던 박근혜정부의 야심찬 공약이 출범 6개월 만에 난파 위기에 처했다. 경기침체 등으로 공약가계부가 제시한 재원 134조8000억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전통적 지지층을 중심으로 ‘복지공약을 재조정하자’거나 ‘공약파기를 선언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제1타깃은 기초연금이다. 다음달 정부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 내에서는 지난 4월 발표된 공약가계부보다 4조원쯤 아낄 수 있는 기초연금 설계안을 놓고 바람몰이가 시작됐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복지국가론은 용두사미가 돼가는 분위기다.

◇‘후퇴’ 바람잡는 박근혜표 복지공약들=기초연금에 관한한 정부는 이미 ‘모든 노인’에서 ‘만 65세 이상 노인의 70∼80%’로 지급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방침을 세워둔 상태다. 지급액을 두고도 여러 안을 만지작대고는 있지만 ‘월 20만원 정액 지급’이라는 대선 공약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만은 분명히 했다. ‘노인 70∼80%를 대상으로 월 20만원-α를 지급한다’는 기본 원칙에 대해 적어도 정부 내에서는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 설전은 ‘α’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이뤄지고 있다.

이런 정부 설계안은 지난 2월에 발표된 인수위안보다도 돈이 덜 드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인수위가 계획한 기초연금의 2014∼17년 예산은 44조3000억원. 현재 논의되는 설계안은 이보다 10조원 이상 줄어든 34조2000억원(노인 70% 대상 차등지급)이다. 인수위안은 대선공약(60조3000억원)보다 예산을 16조원이나 아낄 수 있는 방안이었다. 결국 국민들은 대선공약의 3분의 2(26조1000억원)가 잘려나간 기초연금을 받아들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약가계부에 반영된 액수만 따져도 정부안 예산은 13조원으로 인수위안인 17조원보다 4조원을 아낄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약가계부를 발표할 때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9만6800원 지급)을 기초연금으로 확대 개편할 때 발생하는 추가 국비(國費)만을 계산해 반영했다.

◇이미 파기 선언한 4대 중증질환 보장계획=박근혜정부의 주요 복지공약 중 하나인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등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 역시 한 차례 공약파기 논란을 겪었다. 지난 6월 정부는 올해 3000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1조∼3조원씩 5년간 총 8조99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률을 현재 75%에서 82∼83%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런 로드맵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라는 대선공약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진짜 불만은 핵심을 피해간 정부 태도 때문에 터져나왔다. 4대 중증질환 환자가 지는 부담의 40∼50%는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에서 생긴다. 보장성 강화의 핵심이 3대 비급여 해결인 셈이지만 정부는 오는 12월로 답변을 미룬 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