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가장 보람된 일은
입력 2013-08-27 17:31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고출산국이었다. 한 가정에 자녀 네댓은 기본이었다. 자녀가 예닐곱인 가정이 적지 않았고, 열 명을 넘어서는 집도 있었다. 자녀가 한둘인 가정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널려 있는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집안에 아이들이 많았다. 개성과 성격이 제각각인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웃음꽃이 만발했고, 크고 작은 소동도 끊이지 않았다. 자녀가 많은 집의 맏이와 막내의 나이차는 띠동갑을 훨씬 넘어섰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막내의 눈에는 맏이가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았다.
맏딸이 막내를 업어서 키웠다. 논밭일을 하러 간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것은 누나나 언니의 몫이었다. 불평불만도 늘어놓지 않고 제 할 일인 것처럼 동생들을 건사하는데 엄마 같은 정성을 쏟았다.
마흔 줄에 접어든 어머니의 젖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형수나 올케가 갓난애인 시동생이나 시누이에게 젖을 물렸다. 일종의 젖어머니나 유모 역할을 한 것이다. 남의 집에 가서 동냥젖을 먹인 것이 아니라 집안 문제를 가족끼리 해결한 셈이다.
이런 젖을 먹고 자란 시동생이나 시누이는 형수나 올케를 길러준 어머니로 여겼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지만 젖어머니인 올케와 그 젖을 먹고 자란 시누이 사이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젖을 먹여 키워준 형수나 올케에게 보은하기 위해 해외 효도관광을 보내주는 이들도 있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들고 나왔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도 등장했다. 1970년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산아제한 문제를 다룬 영화 ‘잘살아보세’를 회상하는 이들도 많다.
정부가 장려한 산아제한정책이 국가적 재앙을 몰고 왔다. 고출산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저출산국도 아니고 초저출산국이 된 것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297명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나라가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출산과 양육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나 배우자를 빼닮은 아기를 낳아 사랑으로 기르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뜻깊고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한국의 ‘노인병’을 치료할 길은 요원해진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