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억류 중인 北 김정은, ICC에 제소할 것”
국군포로와 탈북자 문제 그리고 6·25 추념공원 건립.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 머릿속에는 온통 이 세 가지뿐인 듯했다.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와 탈북자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보살피지 못했던 역사의 조난자’라고 부른다. ‘나를 잊지 마세요’란 꽃말을 가진 ‘물망초’를 단체 이름으로 정한 것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희생자들인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6·25 추념공원 건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창립총회가 27일 있었는데, 추념공원을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25전쟁으로 국군 13만7800여명이 전사했고, 3만2800여명이 실종 또는 포로가 됐습니다. 유엔 깃발 아래 참전한 16개국 연합군 4만670명도 숨졌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더 커 37만여명이 숨지고, 8만5000여명이 납북됐죠. 6·25는 이 같은 어마어마한 피해 속에서도 북한 공산군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승리한 전쟁입니다. 그럼에도 전쟁 발발 연도도 모르는 국민이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번듯한 6·25 전적지가 없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파리공원이나 앙카라공원은 있지만 아직도 6·25를 추념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상흔을 상기하는 것은 물론 안보 및 역사 교육관 역할을 담당할 공원이 필요합니다.”
-추념공원 사업은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요.
“그동안 세 차례 준비회의를 통해 대상지를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Punch Bowl·화채 그릇)과 춘천의 옛 미군기지 캠프페이지 두 곳으로 압축한 상태입니다. 펀치볼은 6·25전쟁 중 60여 차례나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치러졌던 곳입니다. 춘천은 우리가 처음으로 승리고를 울린 곳입니다. 두 군데 모두 의미가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공원을 세울지는 공청회를 통해 결정할 예정입니다.”
-국민들의 동참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몇 달 전쯤 ‘추념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조그맣게 보도됐었어요. 그걸 보고 한 할아버지가 100만원을 들고 찾아와서는 공원 건립에 써 달라고 하더군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된 게 아니어서 곤란하다며 되돌려 보내려 했지만 그 할아버지는 ‘물망초’ 활동에 써도 괜찮다면서 돈을 놓고 갔습니다. 이어 해외동포들로부터도 동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열기를 느끼면서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국민운동본부에 100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고문직을 수락했습니다. 국민들의 참여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DMZ 세계평화공원과 겹치는 부분은 없을까요.
“DMZ 평화공원은 정전 60년 동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태공원에서 시작해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뜻에서 추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어서 평화공원 성공 여부는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반면 추념공원은 우리 땅에, 우리가, 우리 의지로 만드는 6·25를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평화공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두 공원이 만들어지면 연계가 가능할 것입니다.”
-국군포로들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데요.
“정전 60년이 넘도록 국군포로들을 억류하며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는 북한 당국은 제네바협정을 위반한 현행범입니다. 김정은을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이들에 대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조국이 조국입니까. 자기 나라 군인도 구해주지 못하는 조국을 보면서 어떤 젊은이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군대를 가려고 하겠습니까. 정치권에서 국군포로 문제가 이따금 거론되곤 합니다.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공약으로 딱 한 줄 집어넣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마저 대선이 끝나면 유아무야됩니다.”
-생환한 국군포로 상황은 어떤지요.
“1994년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로 온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이 81명인데, 이 중 30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해 살아계신 분들을 모시고 전쟁기념관에서 간담회를 열었고, 올해도 서울 수복일인 9월27일 간담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다음달 9일에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의 면담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려면 국군포로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국방부가 너무 비협조적입니다. 국군포로들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개인정보라면서 선뜻 내주지 않는 거죠. 북한에 가족이 있는 경우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할아버지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들을 6·25 행사에 부르지도 않습니다. 6·25 행사장 맨 앞줄에 앉혀야 온당한 것 아닙니까.”
-정부가 왜 소극적이라고 보시는지요.
“북한을 자극할까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자세로는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침묵하고, 숨길 게 아니라 당당하게 거론할 때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질 겁니다. 탈북 군군포로 1호인 조창호 중위 외에 국민들에게 알려진 국군포로가 없는 게 과연 정상입니까.”
-박 이사장께서 개소한 국군포로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한 결과 중 주목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지난 5월 신고센터를 연 뒤 한 국군포로 진술을 토대로 함경도 탄광지역에 사는 국군포로 100여명의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이때 증언한 국군포로 할아버지에게 명단을 왜 이제 내놓았느냐고 묻자 그는 ‘한국에서 많은 조사를 받았지만, 다른 국군포로에 대해선 단 한번도 묻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구하면 얻을 수 있는데, 정부는 구하지도 않은 거죠.”
-‘탈북자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탈북자 문제에 열정을 쏟고 계십니다. 탈북자 실태가 얼마나 열악하며,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
“탈북자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지만 북한을 탈출한 분들은 대한민국이 도와야 마땅합니다. 탈북자의 실업률은 전체 국민 실업률보다 3배 이상 높고, 자살률은 6배나 된다는 통계가 탈북자의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돈 몇 푼 쥐어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살률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재입북 사태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요. 탈북자들이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고 자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시키고, 대한민국이 내 조국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따듯한 토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탈북 청소년 문제는 어떻습니까.
“2만5000여명의 탈북자 가운데 25세 이하 청소년이 1500여명가량 됩니다. 성인보다 청소년들이 겪는 갈등이나 혼란은 더 심각합니다. 수학능력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도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망초’에서는 탈북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대안학교를 설립해 운영 중에 있고, 성적 우수자들을 선발해 해외연수도 보낼 예정입니다.”
-정부나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분단 68년째입니다. 희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국민들이 따뜻한 손길을 바라는 ‘역사의 조난자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다들 살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가 하나 남은 은가락지를 빼 하나님께 바칠 때 기적이 일어났듯, 힘든 가운데서도 콩 반쪽을 갈라 먹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가짐으로 역사의 조난자들을 기억하고 도와준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통일도 우리 곁에 성큼 찾아올 것입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인人터뷰] 6·25 추념공원 건립 나선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
입력 2013-08-27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