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엘리트조차 카스트 악습 못버려” 인도에서 만난 기독청년과의 대화
입력 2013-08-27 10:26
[미션 톡] 한국에도 유명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배경은 인도에 실제로 있는 국립대학인 ‘임페리얼 공과대학(ICE)’이다. ICE는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으로 인도를 정보통신 분야 선진국으로 이끈 교육기관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나 북미·유럽의 정보통신 기업에는 인도인들이 많이 일한다.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근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곳의 인도인들도 자기들끼리 계급을 정해놓고 서로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재들도 악명높은 카스트 제도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인도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나라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인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새로운 지구의 중심이 될 국가로 인도를 지목했을 정도로 정보통신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달해 있고 인구가 12억명이 넘는 대국이다. 그런데도 인도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종교적인 이유로 한 마을을 불태운다거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상화돼 있다거나, 카스트 제도에 따른 계급 때문에 종족 차별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21세기와 19세기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가 인도다.
첸나이에서 만난 인도의 한 크리스천 청년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인도는 정보통신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달하고 스마트한 사람도 많은데, 왜 아직도 악습이 팽배해 있는 것인가?
“인도 사람들은 인간이 브라마(힌두교의 가장 큰 신)에게서 나왔다고 믿는다. 머리에서 나온 사람은 브라만, 가슴에서 나온 사람은 크샤트리아, 배에서는 상인들, 이런 식이다. 이게 카스트 제도다. 서로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고 교류도 하지 않는다. 도와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엘리트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적인 문제인가?
“마을마다 무당 같은 존재가 있는데, 그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잘 따른다. 누구를 죽이거나 차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게다가 누구나 무당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신을 만났다고 하면서 스스로 무당이 되면 기존의 무당과 싸운다. 그게 갈등의 원인이 된다. 뿌리 깊은 문화라 바꾸기가 어렵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의상, 음악을 보면 인도는 아주 훌륭한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고 또 이것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는 이런 좋은 전통과 악습을 잘 구분해서 균형 있게 발전해 나갈 준비가 돼 있는가?
“낙관하기 어렵다. 좋은 전통은 아쉽게도 많이 파괴되고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인도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점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빈민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도 새로 도입돼 대상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골 구석까지 도로가 새로 깔리는 모습도 보았다.
“아직은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특히 남부와 북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함께 미래에 세계적인 대국으로 떠오를 나라로 인도를 꼽는다.
“중국과 우리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중국처럼 될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한국은 과거 전쟁을 겪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해 가난에서 벗어났다.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도 사람도 사실 교육에 열심이다. 정부도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큰 변화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 것 같은가?”
이 청년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는 나도 뭐라고 답할 수 없었다. 다만, 만약 한국에도 무속종교가 강한 영향을 가지고 있다면 인도와 비슷한 상황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상황도 인도와 견주어 딱히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 역시 돈과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신분을 나누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가. 좋은 전통을 잃어버리고 물질 중심의 문화에 취해 있으며 자살률이 높아진 한국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우리가 인도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인간은 물질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인, 또 영적인 영향을 깊이 받는다는 점,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의외로 물질보다는 영적인 것이 더 크다는 점을 인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