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학대 김선현 교수 “자살 고위험군 학생 미술치료 큰 효과”

입력 2013-08-26 19:03


아이의 그림 속엔 뭉크의 ‘절규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뒤로는 높은 아파트에서 누군가 떨어지고 있다. 또 다른 그림 속엔 화산이 붉은 용암을 뿜어내고 있다. 그림이라기보다 낙서에 가까운 것들도 여럿 눈에 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나비정원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집단 따돌림과 성적 스트레스, 가정불화 등으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제 시도했던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들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차의과학대 김선현 교수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분노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해부터 자살 고위험군 학생들을 대상으로 ‘임상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임상미술치료는 미술활동을 통해 환자의 심신 상태를 평가하고 질병 치료나 증상 호전을 도모하는 치료법이다.

올해는 지난 2월부터 서울시내 중학교 가운데 동참 의사를 밝힌 5개교 학생 50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 38명은 자살 시도 경험이 있었다. 자살 시도 이유는 성적이 26%로 가장 많았고, 부모 이혼 및 별거(22%), 따돌림(18%) 등 순이었다. 전문임상미술 치료사들이 각 학교를 주 1회씩 찾아가 석 달여간 방과후 아이들에게 미술치료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세상 사는 의미가 없다’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아이가 미술치료 후 학급 부회장이 될 정도로 자존감이 높아진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D중학교 3학년 이모군은 가정불화와 원만하지 못한 또래관계 등으로 2∼3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자살 고위험군이다. 미술치료 초기 이군의 그림 속에는 가족의 손발이 없거나 온전하지 못한 집이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치료 끝 무렵 그는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김 교수팀이 지난 7월까지 미술치료 대상 50여명의 뇌파검사 등을 해 본 결과 우울 지수는 미술치료 전 53.6에서 치료 후 48.4로, 자살생각 지수는 29.8에서 26.8로, 정서행동 지수는 43.3에서 35.6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Y중학교 1학년 유모군은 “예전에는 화가 나면 뭔가 부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데 미술치료를 받고 나서는 화를 조절할 수 있고 내 모습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Y중학교 김모 상담교사는 “미술치료가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자살 등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들이 각급 학교에서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