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원섭] 우리 곁에 무궁화가 있다

입력 2013-08-26 18:49


중국 ‘시경(詩經)’에 ‘안여순화(顔如蕣華)’라는 구절이 있다. ‘여자의 얼굴이 어찌 예쁜지 마치 무궁화와 같다’는 뜻이다. 이렇듯 무궁화는 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과 예쁨의 상징이었다.

우리 모두가 알듯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다. 그러나 태극기와 애국가와 달리 무궁화는 법령에 의해 국화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저 다수의 국민에 의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것이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을까. 사료적으로 살펴보면 신라 ‘효공왕’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이웃 나라들은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고 우리 스스로도 국호의 별칭을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이라 칭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국화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갑오경장 이후 민족의 자존을 높이려고 애쓴 선각자들의 노력과 애국가 후렴구에 무궁화가 등장하고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유난히 부침이 많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국화로서 무궁화의 기원만큼이나 사연 또한 녹록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 일제는 무궁화가 민족과 조국을 상징하는 강력한 존재임을 깨닫고, 수많은 술책을 부렸다. 일례로 무궁화가 ‘병충해가 많이 생기는 볼품없는 꽃’이라 비하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며 멀리하도록 강요했다.

이것도 부족하여 무궁화를 캐어 오는 학생들에게는 상을 줬고, 캐낸 자리에는 벚꽃을 심는 등 치밀한 국화 말살 정책을 강행했다. 이에 수많은 애국독립지사들은 국권상실의 슬픔을 무궁화와 결부시켜 무궁화를 민족과 일제저항을 상징하는 꽃으로 만들어 냈다.

무궁화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에 만개한다.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매일 지고 피며 한 나무에서만 2000∼3000송이의 꽃을 만들어낸다. 뜨겁고 거친 기후에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은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 민족과 국민의 얼굴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무궁화를 즐겨 찾고 있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해마다 봄이면 봄꽃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지만 무궁화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에 산림청은 1990년부터 해마다 8월 무궁화 축제를 개최, 나라꽃 무궁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널리 홍보해 왔다. 2009년부터는 ‘무궁화 테마도시’ 조성 사업에 착수했고 도시생활권 주변에 ‘무궁화동산’을 조성해 국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식목일에 ‘무궁화 묘목 나눠주기’ ‘무궁화 심포지엄’ ‘무궁화 콘텐츠 공모전’ ‘무궁화 문학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와 교육 등을 통해 무궁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자 애쓰고 있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올해 ‘나라꽃 무궁화 축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참여를 해주셨다.

나라꽃 무궁화의 역사와 기원, 애국심을 떠나 무궁화는 세상에서도 너무 아름다운 꽃이다. 튤립하면 네덜란드, 벚꽃하면 일본을 연상하듯 하루빨리 무궁화에게도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이 모두가 우리 국민들께서 나라꽃 무궁화를 지금보다 더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무궁화가 최절정기로 치닫는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 한 번쯤 아이들 손을 잡고 무궁화를 보러 가시는 것도 좋을 성싶다.

신원섭 산림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