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민감한 진술 재판기록서 삭제”

입력 2013-08-26 18:22 수정 2013-08-26 22:08

‘세기의 재판’으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의 진술 내용 중 민감한 부분은 재판기록에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시라이는 26일 속개된 공판에서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서기가 쓰촨성 청두 소재 미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을 기도한 것은 그가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와 몰래 사랑을 나누다 둘 사이가 틀어진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보시라이의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심리는 26일 피고인 최후진술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합의체 평의를 거쳐 별도 선고 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천시퉁(陳希同·전 베이징 서기·사망), 천량위(陳良宇·전 상하이 서기), 류즈쥔(劉志軍·전 철도부 부장) 등 고위층 인사의 경우 1심에서 심리가 끝난 뒤 선고까지 걸린 기간은 열흘에서 한 달까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랐다. 중국은 3심제가 아니라 2심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내용 삭제됐나=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보시라이의 진술 중 △자신이 아내 구카이라이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탄원하면서 당 지도부에 편지 5장을 보냈다고 밝힌 내용 △당 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 조사관이 자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과거 부패 사건에 연루된 관리들의 사례를 들면서 “자백하면 살아남고 부인하면 사형된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한 부분 등이 삭제됐다고 밝혔다.

보시라이가 구금 기간 중앙기율위로부터 수백 차례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27차례나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고 주장한 내용도 재판 기록에서 삭제됐다. 이에 따라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은 자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법정 상황을 문자로 중계하면서도 이러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방청객 중 보시라이 친구는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내가 사형 판결을 받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 보과과(博瓜瓜)도 송환 조치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보시라이가 진술했다”고 전했다.

◇보시라이, “왕리쥔, 아내와 몰래 사랑”=보시라이는 왕리쥔이 구카이라이와 ‘몰래한 사랑’이 파탄나면서 아내와 다투던 중 현장을 자신에게 들킨 뒤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망갔다고 말했다.

당시 구카이라이는 왕리쥔에게 “너는 좀 비정상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장에 나타났다가 물건을 챙겨 곧바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둘 사이 관계는 서로 주고받은 편지에도 드러나 있다고 보시라이는 진술했다.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가정을 침입한 데 대해 무사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는 게 보시라이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이 구카이라이의 살인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은폐하려 했다는 왕리쥔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보시라이 최후진술 내용은=“팔자에 있는 재난은 피할 수 없다. 만감이 교차한다.” 보시라이는 최후진술을 통해 폭탄선언을 하기보다 인간적인 과오를 반성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가족과 부하를 잘못 다스렸다”거나 “당과 군중에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또 “쉬밍 다롄스더그룹 회장이 보과과의 학비를 대주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몰랐던 것은 허물을 벗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직권남용(구카이라이 살인 사건 은폐)이나 뇌물수수(프랑스 니스 별장 매입) 등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