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원세훈, 무차별 종북 낙인… 판사도 적으로”

입력 2013-08-26 18:13

검찰이 26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불법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 첫 공판에서 “구체적 근거 없이 개인·단체에 종북 딱지를 붙여 온 원 전 원장의 행태는 신종 메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이라고 규정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정당한 대북 사이버 활동을 기소한 검찰의 행위는 국정원의 손발을 묶으려는 종북 좌파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과 원 전 원장 측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팽팽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개인·단체를 무차별적으로 종북으로 지칭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10년 부서장 회의 때 ‘판사도 이미 적이라 사법처리가 안 될 거야.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사법부까지 종북으로 지칭했다”고 주장했다. 또 “전 직원이 인터넷을 청소한다는 생각으로 종북 세력들을 끌어내야 한다” “종북 좌파들로 인해 오염된 국민의 생각을 사이버 활동으로 정화시켜야 한다”는 원 전 원장의 발언도 공개했다.

국정원 사이버팀 직원들의 구체적인 인터넷 활동도 공개됐다. 검찰에 따르면 사이버팀 직원 20여명은 1명당 하루 3∼4건씩 게시글 목록을 제출해 결과적으로 매월 1200∼1600건의 게시글을 인터넷상에 올렸다. 검찰은 이들이 보안을 위해 아이디 등을 수시로 삭제하고 노트북에 저장된 활동 내용을 일주일마다 지웠으며,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료은폐를 위해 게시글 1700여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또 2011년 12월부터 약 1년간 외부 조력자를 고용해 월 300만원을 지급한 사실도 공개됐다. 검찰은 “조직적인 사이버팀 활동이 최종적으로는 원 전 원장에게 보고됐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의 지시와 인터넷 댓글 간 연결고리에 대한 정황도 제시됐다. 검찰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원 전 원장의 발언이 있자 직원들이 4대강 찬성 글을 올린 후 보고했다”며 “2011년에는 종교단체의 정치 활동에 대한 지적에 명진 스님의 룸살롱 출입을 비판하는 글이 게시됐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 측은 대북 사이버 활동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변호인 측은 “조폭이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되나 판사가 사형선고를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며 “댓글 활동은 정당한 업무”라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부서장 회의 발언 등에 대해서는 “직원이 작성한 자료를 보고 두서없이 말한 것”이라며 “전체 발언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반박했다. 변호인 측은 이어 “검찰에서도 선거법 혐의에 대한 대립이 있었다. 선거법 위반은 합리적으로 유죄 입증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오는 10월 6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집중 심리를 진행키로 했다. 다음달 2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