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시장 진단] “금융위기 막으려면 외환 실탄 4000억 달러 넘어야”

입력 2013-08-26 18:05 수정 2013-08-26 22:16


신흥국 발(發) 외환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외환보유액이 ‘실탄’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국자본의 유출입이 빈번한 우리 경제 특성상 4000억 달러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기획재정부는 26일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지난 7월말 기준 3300억 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치의 130% 수준이다.

IMF는 단기외채와 외국인 증권·기타투자 잔액, 시중통화량, 수출액 등을 반영해 국가별 적정 외환보유고 기준치를 제시하고 이 기준치의 100∼150%를 적정 금액으로 권고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IMF가 권고한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2500억∼3800억 달러 수준이다. 국제신용평가사들도 현재 외환보유액 수준을 적당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보유액은 국가가 금융위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기댈 수 있는 비상금이다. 외환시장이 요동칠 때 환율을 안정시키는 실탄으로 쓰인다.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갖고 있으면 그만큼 대외 지급능력이 있다는 의미여서 국가신인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최근 신흥국 외환위기설의 진원지인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IMF 기준치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 낮은 편이다. IMF가 집계한 주요 아시아 신흥국의 기준치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 2011년말 기준 인도네시아가 165%, 인도는 180%에 달했다. 필리핀(344%), 태국(317%), 말레이시아(137%·2012년말 기준)도 우리나라보다 높다.

외환보유액의 절대규모는 한국이 인도나 인도네시아를 능가하지만 외국인 자본투자액, 단기외채, 교역량 등을 고려한 적정 기준 대비 금액은 오히려 적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국이고 재정건전성도 좋은 편이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현금인출기’라고 불릴 정도로 외국자금의 유출입이 빈번하다. 게다가 북한 리스크도 있어 외환보유액이 IMF의 권고치 범위에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런 까닭에 선진국의 유동성 회수에 대비해 한국도 외환보유액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한국은행 국제국장을 지낸 안병찬 KB투자증권 감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 성장둔화, 일본의 아베노믹스 실패 등 위기 가능성을 고려할 때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4000억 달러 수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단기외채 비중이 줄고 외국인 투자자의 성격 변화 등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작아 현 외환보유액 수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 지난해 외환보유액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차액손실과 통화안정증권의 이자비용을 합치면 11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도 정부로선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부담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