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험 교실서 ‘살얼음 수업’… 한증막 교실서 ‘헉헉’
입력 2013-08-27 05:28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무상보육, 고교무상교육까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그럴듯한 교육복지 정책이 쏟아졌지만 정작 상당수 학교 현장에서는 시설 안전이나 학습권 등 기초적인 것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비만 오면 학교 건물이 붕괴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교직원들, 비가 새 곰팡이 슨 교실을 청소하는 중·고교생들, 찜통 교실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은 우리 교육복지의 현주소다. 수도권에 장대비가 쏟아진 다음날인 지난 23일 서울시내 학교들을 둘러봤다.
◇붕괴 위험 학교에 땜질식 보수=남녀 중·고교를 같이 운영하는 A학교의 경우 여중생들이 쓰는 건물 전체가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이 건물의 지반은 바로 옆 옹벽이 마치 댐처럼 떠받치는 구조다. 곳곳에 금이 간 옹벽에서는 비가 그쳤지만 흙탕물이 새고 있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보였다. 옹벽이 무너지면 건물 아랫부분을 지탱하던 토사가 일시에 쓸려 나와 건물 전체가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학교 시설관리 담당자는 “비 오는 날은 언제나 비상이다. 새벽에 출근해 조마조마하며 돌아본다”고 했다.
이 학교의 붕괴 가능성은 이미 5년 전 제기됐었다. 2008년 점검 결과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하는 D등급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최근까지 미뤄지다 D등급을 C등급으로 올리는 보수공사 쪽으로 결정됐다. 예산 부족으로 땜질식 처방을 내린 것이다.
남고생들이 쓰는 건물은 지반이 침하돼 복도 전체가 꺼지고 있었다. 화재 등 비상시 쓰는 대피계단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폐쇄된 상태다. 이 학교 관계자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은 학생들이 밟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붕괴 공포에 비하면 비가 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새로 지어야 하지만 땜질만 하고 있어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걱정했다.
◇‘위험 천만’ 나사 빠진 놀이시설=B초등학교 놀이터도 안전 사각지대였다. 지난 4월 점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사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학생들로 붐볐다. 조합놀이대의 경우에는 나사가 빠져 덜렁거렸지만 경고 메시지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철봉·늘임봉·늑목 등이 설치된 땅바닥은 충격 흡수재나 모래가 깔려 있어야 하지만 딱딱한 바닥 그대로였다. 학생들은 이 시설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장난치고 있었다.
이 학교 행정 담당자는 “원래 사용 중지 같은 스티커를 붙여 사용을 막았어야 하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 놀 곳이 없어지니 그러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이 학교 놀이터는 조만간 보수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예산이 없어 계속 미뤄오다 지난달 말에야 추경예산에 포함돼 지원을 받게 됐다. 원래 예산안보다 깎였지만 “이걸로 만족해야 했다”고 학교 관계자는 설명했다. 함께 신청했던 K초등학교의 경우 놀이시설 점검과 보수 예산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유치원 놀이시설 558개소 가운데 164개소, 초등학교 603개소 중 112개소는 안전점검 없이 운영되고 있다.
◇전기요금 예산 바닥난 학교들=학교 운영비 부족으로 폭염을 힘들게 버티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서울 일월초의 경우 폭염으로 연초에 세워둔 전기요금 예산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가장 더운 시간대인 점심시간에만 에어컨을 틀었지만 앞으로는 이마저도 힘들게 됐다.
김현진 일월초 교장은 “비지땀을 흘리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Y초등학교의 경우 학년별, 학급별로 돌아가며 에어컨을 틀고 있다.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면 더위를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 학교 교장은 “냉방 예산이 거의 바닥났다. 각종 복지예산 때문에 시설이나 특성화 예산·보조금도 다 끊겼다”고 성토했다.
이도경 황인호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