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여러분 휴가는 어떠했습니까

입력 2013-08-26 17:51


여름휴가도 거의 끝났다. 각자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으리라. 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을 생각하면 휴식의 가치, 여가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진다. 휴가기간 재충전한 에너지가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활력소가 됐을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재창조의 원천

휴식과 여가 선용이 ‘재창조(Re-creation)’의 원천이 된다는 인식은 서구에서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휴식은 시간낭비라는 고전적 사고에 젖은 사람이 많은 우리네와는 사뭇 다른 의식구조다. 서구사회는 그때부터 국민들의 휴식과 여가를 위해 제도 정비와 함께 각종 여가시설을 구축했다. 미국의 경우 최악의 경제난을 겪던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절에도 전국에 3만5000개의 운동장을 건립하며 국민들의 여가 욕구에 부응한 바 있다. 이러한 것들은 ‘여가=재창조’라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여가생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여행도 재창조의 원천이 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만큼 더 좋은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여행을 엘리트 교육의 연장선에서 장려했던 국가는 근대 영국이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 하여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행했던 유럽 여행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당시 영국 젊은이들은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세련된 파리를 여행하면서 세계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현장에서 향유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유럽 곳곳의 유적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이 여행은 귀족사회의 필수 코스로 간주됐다. 이들은 여행 도중 동행한 가정교사로부터 현지 언어와 학문을 익히는 한편 승마, 펜싱, 춤 등을 배웠다.

요즘 기준으로 봐도 호화판 여행이었지만 이들이 그랜드 투어 중 흡입한 글로벌적 사고방식은 훗날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어떤 교육학자는 이 여행을 ‘엘리트 교육의 결정판’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여가교육, 창조경제 성패 좌우해

이처럼 여가와 여행을 단순히 휴식, 유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학습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면 또 다른 시사점을 엿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창조경제’라는 개념과 접목시키면 여가와 여행은 새로운 교육적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창조경제란 개념 자체가 아직 모호하다지만 창조경제가 뿌리내리려면 ‘창의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창의성 개발은 우리네 학교교육 현장과는 한참 동떨어진 개념이다. 오로지 외길, 즉 대학입시로만 쏠려 있는 고교 교육은 암기력을 앞세운 고득점 전략 연구소가 돼 버렸다. 대학 또한 취업에 목숨을 건 군상들의 집합소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창조경제를 하자면서 도대체 창의력을 키우는 공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나.

학자들은 놀이와 여가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학자들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마음껏 상상하고 뛰어놀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놀이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 능력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뇌과학자들은 뇌도 휴식을 취해야만 더 잘 배우고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여가학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창의적 여가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한다.

이처럼 여가는 단순히 남는 시간의 소모적 활동이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이는 창의적 활동이다. 여가에 몰입하는 법, 잘 노는 법도 공교육 영역으로 끌어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나간 여름휴가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잘 놀았습니까.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