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선교란 무엇인가?

입력 2013-08-26 19:03


중동 지역의 B국에서 사역하는 A선교사를 만났다. 모슬렘 지역인 B국은 공식적으로 한국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곳이다. A선교사는 선교비자가 아닌 다른 형태로 10년째 현지에 머물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것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단다.

A선교사는 수없이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철수를 권고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경험했다. 첫 번째로 떠날 것을 작정했을 때 그와 수년 동안 함께 지낸 현지 아이들이 간절한 눈으로 말했다. “당신을 여기 남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지난 30여년의 전쟁 기간 동안 정부와 가족 모두가 우리를 버렸습니다. 희망이 없었지요. 그저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와서 함께 지낸 몇 년간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을 보내기 싫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A선교사에게 그것은 예수님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얘야, 이곳 역시 내가 사랑하는 땅이란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니?” 결국 그 땅에 남았다.

삶은 현실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철수하려고 일단 한국에 왔다. 목포의 한 선교센터에서 허름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양화진에 묻혀 있는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책을 펴자마자 한 사진이 보였다. 조선 땅에 와서 26세에 순교한 루비 캔드릭 선교사의 묘지였다. 묘비명이 보였다. ‘내게 만약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주겠습니다.’ A선교사는 그 묘비명을 보고 통곡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다시 갈 수 있겠느냐?” 그 땅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한 번도 스스로 철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친하게 알고 지낸 영국인 여성이 있었다. 명랑했던 그녀가 어느 날 폭탄 테러로 즉사했다. 그 지역에서는 다반사였지만 지인의 죽음은 A선교사를 충격에 빠뜨렸다. 장례식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절규하듯 말했다. “내 딸을 위해 울지 마십시오. 이 땅을 위해 슬퍼하십시오. 그날이 오면 우리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그는 매일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며칠 후를 약속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것이 최전방 선교지의 삶입니다. 매순간 최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것에 내 인생을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A선교사는 7년 전 결혼한 아내와 6년째 떨어져 살고 있다. 두 자녀는 어쩌다 만나는 아버지를 아저씨 취급한다. 믿음 선교를 하기에 늘 배고프다. 그는 내게 선교는 배고파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불러서는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도저히 알 수 없단다. 선교지에서 그는 긍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1년간 1주일에 하루를 온전히 금식했습니다. 배고팠지요. 그런데 1주일에 하루만큼은 배고픈 그들 가운데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하나님도 배고파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배고픔은 배부름 가운데서는 배울 수 없습니다.”

그에게 “언제가 가장 힘든 순간이냐”고 물었다. “내게 긍휼의 마음이 식어간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것이 저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는데….” 또 물었다. “선교가 무엇입니까?” “솔직히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요. 하나님이 쓰시려 한다면 기꺼이 우리 삶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하나님의 역사보다 대적이 하는 일이 더 잘 보인다는 그곳. 어디에도 도무지 소망이 보이지 않는 그 땅에 한국인 선교사가 있다. 아, 한 알의 밀알이….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