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세에 쓴 학사모’… 1962년 가정형편 어려워 중단한 학업 결실

입력 2013-08-25 19:44


72세 변순영(사진) 할머니가 23일 숙명여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06년 개교 이래 최고령 졸업자다. 변 할머니는 “졸업이 남들에겐 새 출발이지만 내게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변 할머니는 1961년 3월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듬해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경제 사정은 나아졌지만 결혼과 육아가 할머니의 복학을 막았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주변 시선도 복학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들과 딸을 출가시킨 2011년, 입학한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학교로 돌아갔다.

일흔의 고령으로 ‘2학년 여대생’이 된 변 할머니는 수업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시력이 떨어져 책을 보기가 어려웠고, 기억력도 많이 흐려진 상태였다.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몰랐다. 할머니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가족과 학생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수업시간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다.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근처에서 혼자 하숙과 자취를 했다. 변 할머니의 영문과 8년 후배인 조무석 영문과 교수는 “포기하지 않는 게 바로 인생”이라며 “선배님은 용기와 열정으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학생들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교정을 떠났다. 변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받은 분에 넘치는 격려와 칭찬을 되돌려주고 싶어서 장학금을 준비했다”며 “오늘 밤에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