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엘즈비에타 에팅거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입력 2013-08-25 19:18
사랑은 언제나 모순을 동반한다. 그건 사랑이 인간의 오묘함과 나약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독일 철학자인 마틴 하이데거(1889∼1976)와 독일 출신의 당당한 유대인 여성인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아렌트는 열여덟 살이던 1924년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목을 수강하면서 스승인 하이데거를 만나 비밀 연애를 시작한다. 이미 엘프리데 페트리라는 여성과 결혼한 하이데거였지만 유부남이라는 사실과 열일곱 살 연상이라는 점은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렌트의 편지 속 문구처럼 ‘학문적 목표만을 헌신적으로 추구하는 한 남자의 무서운 외로움’이 하이데거의 고독을 짓누를 때마다 아렌트는 그의 곁을 지켰고, 이 모순의 사랑은 평생 동안 지속됐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작가 엘즈비에타 에팅거는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도서출판 산지니·사진)에서 하이데거보다 아렌트의 삶에 방점을 둔다. 이는 아렌트가 자신과 같은 유대계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터이다. 비밀 연애가 시작된 지 약 1년 후,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학위 논문을 더 이상 지도할 수 없다며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칼 야스퍼스에게 소개장을 써준다.
두 사람의 결별 이유에 대해 저자는 “하이데거가 점점 가까워지는 아렌트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를 향한 아렌트의 열정이 식은 건 아니었다.
히틀러 집권 시기, 나치에 협력한 전력을 이유로 하이데거가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하버트 마르쿠제 등 몇몇 제자들이 하이데거에게 등을 돌렸을 때조차 아렌트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복권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후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저서가 미국에서 번역 출판될 수 있도록 적극 돕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어느 부분만큼은 늘 자신에게 귀속돼 있다는 자기 위안을 삼았던 것일까. 이 오묘한 모순이 두 사람을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