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경제가 어렵다는데… 한푼이라도 더 보내야죠”

입력 2013-08-26 04:58


일요일 문 여는 안산 외환은행 원곡동지점 가보니

“가능하면 돈을 많이 보내고 싶어요.”

일요일인 25일 외환은행 경기도 안산 원곡동지점에서 만난 알리(40)씨는 수줍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 온 지 4년 된 알리씨는 인도네시아에 열두 살과 네 살인 두 아들이 있다. 땀에 흠뻑 옷을 적셔가며 그가 용접일을 쉬지 않는 이유다.



200만원 남짓의 월급 중 80만∼90만원 정도를 매달 고국에 보내는 알리씨는 요즘 한 푼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고국의 금융위기 우려 보도를 접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이 많아져서 좋기도 하지만, 나라 경제가 어려워져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외국계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최근 인도네시아 주가는 급락했고, 환율은 크게 올랐다. 이 때문에 알리씨가 같은 금액을 보내도 몇 달 새 인도네시아 가족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루피아를 받게 되는 상황이 됐다. 지난 5월 90만원을 송금하면 773만 루피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같은 금액에도 가족들이 손에 쥐는 돈은 864만 루피아로 늘었다.



알리씨처럼 고국에 돈을 보내기 위한 외국인 노동자들로 원곡동 지점은 평일보다 붐볐다. 오전시간임에도 1층에는 송금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2층에는 신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평균 대기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에 달했다.



외환은행 원곡동지점 김운겸 지점장은 “오늘은 오히려 손님이 없는 편이다. 여기 근로자들은 대다수가 월급날이 10일 또는 15일이어서 지난주에는 800∼1000명 정도 손님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온 사람들. 한국에서 일이 힘들어도 고국에 돈을 보내는 이날만은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2007년 말 외환위기 당시 ‘달러 보내기 운동’을 벌였던 해외동포들처럼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송금하는 돈이 가족뿐 아니라 어려운 고국의 경제 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5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다음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파키스탄인 알리(38)씨는 “회사가 망하기도 하고 사장이 월급을 안 줘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번 돈으로 매달 500달러 이상은 부모님께 보내드릴 수 있어 기뻤다”고 환하게 웃었다.



안산에는 1만80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은행들도 평일에 은행에 올 시간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4개의 은행(외환·국민·하나·신한)이 영업하고 있고 300m 내에는 기업·우리은행도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중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기본적으로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은행 업무 특성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자국어를 할 수 있는 본국 출신 아르바이트생이 도움을 준다. ATM(현금입출금기) 사용이나 계좌개설 등의 문서를 작성하는 도우미들이다.



비타야누라 바나다(39·여·태국)씨는 평일에는 다문화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언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은행에 나와 자국민들의 은행 이용을 돕는다. 바나다씨는 “한국에 와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번 돈의 절반 이상은 보내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안산=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