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넘어선 경제권력”… 뒤늦게 절감한 朴정부?

입력 2013-08-26 03:59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후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취임 6개월이 되자 ‘세일즈 외교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 올해 전반기에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국정운영의 주요 화두로 제시했지만 이제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기업들에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



친(親) 중소기업·경제민주화 기조는 대선 때 새누리당이 선점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던 어젠다였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야당에서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다며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포기했다고 공격하는 이유다. 반면 청와대는 지난 6개월 비정상적이던 관행과 제도를 고친 성과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경제민주화 입법을 꼽으며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후퇴했다는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제 메시지가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면 경제권력이 이미 정치권력을 넘어섰다는 현실을 분명히 실감케 한다. 국가가 경제를 끌고 가던 시절이 아니라는 것을 막상 집권한 청와대는 더욱 절실히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불합리한 시장 구조부터 바로잡겠다는 출범 초 새 정부의 의지에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꺼리고 해외로만 눈을 돌리는 상황이 전개되자 대통령의 발언도 무게중심을 옮겨간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인들과 만나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하겠다”며 파격적인 구상을 밝혔다. 당시 ‘박근혜표 재벌개혁’이 시작됐다는 섣부른 분석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을 거쳐 취임 이후 한 달까지 경제민주화가 경제부흥의 한 축이라는 구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경제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정부는 납득할 만한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고 정치권에서는 경쟁적으로 ‘대기업 때리기’ 법안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높은 규제 장벽으로 국내 투자를 꺼리던 기업들이 과열된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더욱 위축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4월 들어 박 대통령은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경기 회복에 한계가 있다”며 대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등 대기업도 챙기는 면모를 보였다. ‘대·중소기업 상생’이라는 목표에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기업의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 담론을 꺼내들었다. 5월부터 7월까지 박 대통령은 이 기간 두 차례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포함해 각종 공개 발언에서 경제 메시지를 투자진흥에 집중했다. ‘투자→성장→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근혜노믹스(박근혜정부 경제정책)’가 선명한 윤곽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했다.



취임 첫해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며 ‘세일즈 외교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까지 말했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기업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던 전반기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도 “경제 활성화 법안들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앞으로 정부의 역량을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모으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기에 이르렀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