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믿음의 ‘오·태·영’… 섬마을 교육 명가로

입력 2013-08-25 17:28 수정 2013-08-25 19:22


강화 석모도 삼산승영중학교 신앙 교육혁명 현장

트럼펫을 다루는 노희준(16)군의 손놀림이 제법 능숙해 보였다. 자신의 키보다 큰 현악기 더블베이스를 켜는 권태영(15)군은 마치 아기를 쓰다듬는 듯 조심스러웠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 현악기부터 목관악기, 드럼과 탬버린까지 한데 어우러져 연주되는 영국 록그룹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특유의 파워풀한 곡조가 섬마을의 나른한 여름 오후를 깨우고 있었다.

지난 23일 오후 인천 강화군 석모도의 삼산승영중학교 음악실에서는 ‘전교생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2011년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전교생(현재 54명) 모두가 단원이다. 각종 단체로부터 기증받은 15가지 종류의 악기들 중 하나씩을 맡아 연주하면서 취미활동도 하고 종종 자원봉사 공연도 다니는데, 이 학교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삼산승영중은 전형적인 섬마을 학교였다. 학생들이 자꾸 육지로 빠져나가면서 학생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본격적인 해법 찾기가 시도된 건 2006년쯤 노재환(60) 목사가 이사장을 맡으면서다. 그가 내놓은 카드는 ‘교육 커리큘럼’이었다. “학생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무기’가 필요했어요.”



당시 노 이사장이 선택한건 이른바 ‘오·태·영’이었다. 일반 정규학교 과목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프로그램과 태권도, 영어 3가지 커리큘럼을 정착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전교생이 ‘1인 1악기’ 연주로 참여하는 오케스트라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합주를 하면서 학생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어요. 협동심과 지켜야 할 규칙을 알기 시작하고, 합주 공연을 한두 번씩 경험하면서 짜릿한 성취감도 만끽하는 것 같고요.” 이 학교 교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일주일에 2시간씩 진행하는 태권도 등의 동아리 활동, 그리고 학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영어특성화 교육도 호응도가 높다. 특히 매주 금요일은 ‘잉글리시 온리 데이’다.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학생과 교사 모두 영어만 사용한다. 마침 금요일이었던 이날 김세한(57) 교장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교장실 밖 복도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잡담은 모두 영어였다. 김 교장은 “무엇보다도 공부와 학교생활이 즐거워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즐거우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 운영체제가 바뀐 지 7년. 삼산승영중은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았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3년 연속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 0%’를 기록했다. 도서지역 학교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7년 전 34명이었던 학생이 54명으로 63%나 늘었다. 이 중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서울 대치동을 비롯해 타지에서 전학 온 학생이 14명에 달한다. 학군보다는 프로그램을 보고 ‘거꾸로’ 전학을 온 셈이다. 김 교장은 “앞으로 전학생을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전교생을 60명 안팎으로 유지해 내실 있는 교육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섬마을 유일의 중학교는 어느덧 마을의 ‘희망지기’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 2곳뿐인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매년 서너 명 정도는 뭍으로 나갔지만 3년 전부터는 뚝 끊겼다. “승영중학교도 다닐 만하더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서부터다. 임재원 교무부장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조금씩 늘면서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동네 어른들도 좋아하신다”면서 “몇 년 전에 비해 마을이 많이 밝아지고 활기가 감도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학교의 변신 이면에는 ‘믿는 자들의 헌신’이 녹아 있다. 노 목사는 이사장 직함을 달면서부터 학교의 정체성을 못 박았다. ‘믿음으로 승리 하나님께 영광’. 교정 중앙 화단에 놓인 바위에 새겨진 문구는 학교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교직원 예배와 매주 금요일 채플 등은 이제 학생과 학부모, 마을 주민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교장은 일반 고교 수학교사를 거쳐 교무부장, 교감까지 30년간 교직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그는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으로 지난해 이 학교로 옮겨왔다. 3년 전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될 때 “기도로 준비해서 왔고, 여기서 뼈를 묻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던 음악 담당 정유비(27) 교사의 포부도 변함이 없다. 이들 덕분에 섬마을 중학교의 ‘교육혁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석모도(강화)=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