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단체 재정관리에 헌신한 최호윤 회계사 “투명한 회계로 비전 성취에 보탬되기를…”
입력 2013-08-25 17:14
최호윤 회계사의 이메일 아이디는 ‘NGO114’다. 비영리기관의 회계 담당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맘 놓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NGO와 종교기관의 회계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최고의 전문가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관심을 두지 않는 일, 하지만 건강한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교회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회계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성실하게 답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회계사로서 NGO들을 돕다 보면 주먹구구식 회계 처리가 답답하기도 했고, 기껏 가르쳐 놓으면 담당자가 바뀌는 일도 안타까웠다. 아예 손쉽게 관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나눔셈’이다.
“회계사이자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20억원도 훨씬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한 회계 관리는 애초에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기업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ERP(전사적 자원관리 전산프로그램)는 1년 사용료가 수억원이지만 나눔셈은 겨우 수십만원이다. 부족한 재정이라도 투명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려는 작은 시민단체나 교회에는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최 회계사는 집까지 팔아가며 나눔셈을 계속 개발했다. 지금은 회계 장부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경영분석, 회원 관리와 소통 등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그의 가치관을 담은 그야말로 ‘토털 NGO경영 솔루션’으로 발전시켰다.
지금은 400개에 이르는 교회와 NGO가 나눔셈을 이용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낙태반대운동연합,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신나는조합 열린의사회, 좋은교사운동, 한반도평화연구원 같은 시민단체와 한국기독학생회(IVF), 성서한국, KOSTA,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ARILAC), 한국밀알선교단 등 기독교 선교단체는 물론 높은뜻푸른교회, 의정부 임마누엘침례교회, 천안중앙교회와 같은 지역 교회들도 사용하고 있다. 정부의 종교인 과세 방침 이후 나눔셈의 문을 두드리는 교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비용이 워낙 싼 데다 어려운 단체에는 무료로도 제공하다 보니 아직도 운영이 쉽지 않다. 요즘도 회계사로 버는 돈을 나눔셈을 위해 쓰고 있다.
그는 “지금 상태로도 NGO를 위한 회계 프로그램으로는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처음 기도하며 꿈꿨던 나눔셈의 모습을 이루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교회와 선교단체, 이 땅의 많은 NGO들이 돈의 유혹을 이기고 비전을 성취해나가는 일을 돕는 소명을 이룰 때까지 쉴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지 궁금했다. 창립 때부터 나눔셈을 사용해온 늘푸른장사문화원(늘장원)의 신산철 원장에게 물어봤다. 늘장원은 지난해 세무 실사를 받았다. 세무 당국은 1000만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할 태세였다. 나눔셈으로 정리해온 회계 자료와 영수증을 모두 제시하자 까다롭던 세무서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푼의 추징금도 내지 않았다. 신 원장은 “나눔셈 덕분에 회계 담당 직원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도 쉽게 결산보고서를 만들 수 있었다”며 “투명한 회계는 NGO의 생명이라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종교인 소득 과세 방침 이후 최 회계사는 더 바빠졌다. 그는 “일반 NGO는 회계가 투명해야만 후원을 얻을 수 있으니 일찍부터 원칙을 확립해 왔지만 교회와 선교기관은 믿음만 강조하다 보니 변화가 늦다”며 “이 때문에 오해도 생기고 분쟁을 겪기도 하는데, 이제는 정부의 과세 방침 때문에라도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정부의 종교인 과세 방침이 미흡한 점이 있기 하지만 이번 기회에 투명한 회계 체계를 마련한다면 기독교 선교기관과 교회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최 회계사는 강조한다. 청지기에게 돈을 맡긴 주인이 지혜롭게 관리할 것을 요구한 것처럼 열심을 넘어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회로 삼으면 잔치에 초대되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내부에서만 알아보는 방식으로 회계를 정리하고 재정을 관리하는 것은 물고기 잡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손으로 잡거나 작살로 잡는 수준이다. 정부와 사회를 납득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대비를 하면 그물을 만들어 배를 타고 큰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될까. 간단하다. 어떤 단체든 후원금이 들어와야 움직이고 소수의 자산가에게 의존하는 수준에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기 어렵다. 교회도 정직하게 돈 관리를 한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주먹구구식 회계 처리에 머무르게 된다.
최 회계사는 투명한 재정을 잘 실천하는 교회로 서울 서초동 높은뜻푸른교회(문희곤 목사)를 꼽았다. 이 교회는 나눔셈을 활용해 71개 부서의 재정을 자체 수입과 당회 지원금으로 구분해 처리하고 있다. 교회는 전체 재정과 부서별 재정을 언제든 점검할 수 있고, 부서에서도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며 자신의 사업을 추진한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셈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복식부기로 결산된다. 그는 회계 투명성과 교회 운영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선교 헌금과 건축 헌금처럼 목적 사업을 위해 바쳐진 헌금과 십일조, 일반 헌금과 주일학교 헌금이 교인들이 결정한 각각의 목적에 따라 제대로 쓰여지는 모습을 제때 보여준다면, 교회가 비전을 제시하고 성도들을 설득하며 공동체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되고 사회는 교회가 외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최 회계사는 “투명하지 않으면 속에서 곪아 썩어 들어가도 모른다”며 “투명해야 스스로 정화해가며 고쳐나갈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