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21) 독일의 정치교육
입력 2013-08-25 17:41 수정 2013-08-25 23:05
정치교육, 통독 이후 실질적 체제통합 ‘일등공신’
독일의 정치교육은 통일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 정치교육을 실시했다. 나치의 영향 등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보다 민주주의가 비교적 늦게 틀을 갖췄기 때문에 이때의 정치교육은 특정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율성’과 ‘비판·판단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 자유민주주의, 다원주의에 중점을 뒀다. 이런 분위기 속에 현재 정치교육의 근본적인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 Konsens)’이 체결됐다.
1976년 가을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소도시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석한 학자,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세 가지 합의를 이룬 것이다. 내용은 △강압, 교화, 주입 금지 △균형·대립적 논쟁 확보 △정치적 상황 및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결론 도출 등이다. 이는 ‘정치교육의 헌법’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은 전체주의 관점에서 사실상 체제 지향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1990년 통일을 계기로 정치교육은 정치·경제·사회적 통합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옛 서독이 주도권을 잡고 정당, 정치재단, 종교단체 등이 직접 옛 동독 시민들의 정치교육에 나섰다. 각 주(州)에 있던 주정부 산하 주정치교육원도 동독지역으로 확대·설립됐다. 공민교과서도 민주적 사회내용으로 전면 개편됐다. 통일 후 동서독 체제의 간극을 메우는 데에는 정치교육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남북이 갈린 한반도에도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
◇정치교육 이끄는 民·官·政=“축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 베를린 한 김나지움(한국 인문계 고교에 해당)에 다니는 야넥 라프탄군이 1학기 과제로 선정한 보고서 주제다. 평소 ‘아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축구에 미쳐 있다’고 걱정하던 엄마는 “깜짝 놀랐다. 아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며 안심했다.
이렇듯 독일 정치교육은 학교가 토대가 된다. 중등교육 과정을 통해 기본 가치와 이념, 국제관계를 배우는 등 민주주의의 전반적 학습은 수업을 통해 진행된다. 교사는 정당 활동이 가능하고 선거기간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후보자에 대한 토론회를 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내용과 절차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이후 독일인들은 학교 밖 기관들로 눈을 돌린다. 정치교육은 학교뿐 아니라 정부, 정당의 정치재단, 시민단체 등이 주도해 왔다. 연방정치교육원은 52년 내무부 산하 기관으로 의회주의적 정부 형태와 민주주의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연간 약 4000만 유로(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그만큼 감사시스템도 철저하다. 연방의회 의원 22명으로 구성된 감독위원회 등이 매년 감사를 한다.
그래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민주주의 질서 및 사회의 이해’ ‘자유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극우(나치)·극좌(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유럽연합, 나토, 유엔의 기능’ 등의 주제 등을 다룬다. 특히 출판물 발행을 통한 교육사업, 정치교육 행사 및 단체 지원이 주요 업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재단 관계자들은 ‘한국에선 정치활동을 해 본 적 없는 유명인도 정당 공천을 받는다’는 말에 “불가능한 일”이란 반응이었다. 정치 경험뿐 아니라 정치력 시험도 없이 신뢰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되묻는 건 “그들이 국민을 행복하게 했느냐”는 물음이었다.
독일도 고민은 있다. 정치 혐오증과 무관심이 확산되면서 여러 방면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를 국민들의 삶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한국에서는 ‘선거가 곧 정치참여’란 등식이 명제처럼 여겨지지만, 독일 정치 전문가들은 “4년마다 열리는 총선에서 투표만 하는 일은 ‘학습 리투얼(의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생활 속의 정치참여를 완성시키기 위한 해법도 정치교육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베를린=글·사진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