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정당 연구소 재정·인사 독립… 당엔 정책 제안만

입력 2013-08-25 17:41 수정 2013-08-25 23:06


한국과 비교해보니

정당의 재단이나 연구소라 하면 흔히 ‘당론에 맞게 정책을 만들고, 여론조사를 하고, 전략을 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다르다. 당 노선이나 철학은 수용하되 재정과 인사는 철저하게 독립돼 있다. 때문에 연구주제나 내용이 자유롭고, 이곳 경력이 정치판에서 출세의 지름길로도 이용되지 않는다.



특히 정치 재단의 가장 큰 역할은 정치교육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프로그램도 있지만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논점 등을 도출해 내는 워크숍이 대부분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이민자 통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유럽 경제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의 극복 방향이 무엇인지, 이집트의 유혈사태 조치 방안 등에 대해 의견 교환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준 낮은 정파적 선동이 아니다.



정치재단은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다. 국가가 나서서 정치교육을 시킨다는 뜻이다. 옛 서독 첫 총리의 이름을 딴 기독교민주당(CDU)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을 비롯해 초대 대통령 이름을 빌린 사회민주당(SPD)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자유민주당), 한스 자이델 재단(기독교사회당), 하인리히 뵐 재단(녹색당),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좌파당) 등 6개의 정치재단이 있다. 최근 세 차례 총선 결과에 따른 의석수 평균을 환산해 연간 약 4억 유로(6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나눠 갖게 된다. 금방 없어지거나 생기는 군소 정당의 재단이 없는 이유다. 올해 총선이 끝나면 2005, 2008, 2013년 평균으로 다시 예산이 잡힌다. 그래서 규모도 제각각이다. 대략 100∼600명의 직원과 10개 안팎의 주(州) 지역 사무소를 둔다.



언론진흥기금 후원으로 베를린 히로시마슈트라세 17번지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을 찾았다. 재단의 아시아 담당 프라우 카트라 뮐러(32·여) 연구원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서는 ‘산하’ 혹은 ‘소속’ 대신 당과 ‘가까이에 있는’ 재단이라 표현한다”며 “정치교육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치재단의 주 업무는 뭔가.



“정치교육과 국제교류, 정책자문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정치교육은 좌·우 노선과 이념 교육이 아닌 건강한 토론을 위해 현안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 정보를 주는 차원으로 보면 된다. 유권자는 물론 정책결정자인 연방·주 의회 의원, 기초단체장, 공무원이 대상이다. 중간교육자라 볼 수 있는 교사, 비정부단체(NGO) 관계자도 포함된다. 국제교류도 주요 업무인데 다른 나라 정치상황 등의 정보를 빠르게 얻어 의원과 정치교육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한국 등 100여개의 국가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다.”



-당마다 진보·보수 성향이 있는데 정치교육에 영향을 줄 거 같다.



“모든 정치재단이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확신을 바탕으로 한 정치교육을 하기 때문에 카논(원칙)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놓고 ‘왜 사민주의 교육을 시키느냐’는 등의 비민주적이란 비판을 때로 받지만 주입식이 아닌, 건전한 토론을 통한 방식이다. 또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정치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 선택적이기 때문에 민주적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적이고, CDU는 보수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독일 정당별 당원 수는 감소하고, 투표 참여율도 낮아지고 있다. 해결책은 있나.



“정치교육으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다. 결국 정치가 내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분명히 해둘 것은 정치혐오증·무관심증이 국민들이 뭘 해도 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무기력함에서 야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 차원에서도 당원 중심이 아닌 일반인 대상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녹색당, 해적당이 이런 부분에선 앞서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당이나 특정 후보를 위한 지원 업무를 하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재단법에 따라 선거 세 달 전부터는 정치인을 세미나에 세울 수도 없고, 정당과 거리감을 두도록 돼 있다. 선거공약집도 당 차원에서 만들지, 우리가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베를린=김아진 기자